제2회 해미백일장 심미향 님 입상작

불청객 치매의 습격
엄마는 하나님 덕후다. 아버지는 평생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신 평범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 엄마와 함께 우리 4남매를 지극정성으로 키워내셨다. 여든이 넘으신 두 분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치매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큰딸인 내가 제일 먼저 감지하고 동생들은 ‘누나. 언니가 예민한 거 아니야?’라며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검사를 하고 두 분 모두 치매 진단을 받았다. 예민한 큰딸 때문에 초기에 진단받으셔서 치매약을 드시며 그나마 일상생활을 하시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라 하겠다. 엄마는 내가 집에서 방문 요양을 하고 아버지는 주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두 분 모두 그럭저럭 잘 견뎌내시는 중이시다.
방문 요양 중인 엄마와 주야간보호센터로 가시는 아버지
우리 엄마는 시각장애인이다. 80여 년 넘게 끄떡없이 살아오셨는데 이제 조금씩 조금씩 낡아지는 중이신 것 같다. 촉각을 이용해 모든 일을 손수 하셨고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번아웃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치매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요양 등급을 받으시고 방문 요양을 신청하려 했지만 엄마는 낯선 사람이 오는 것을 극도로 꺼리셨다. 그래서 같은 교회 집사님이 2주에 한 번 방문 간호를 와주셨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점점 외출도 못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가시는 교회도 못 가시고 코로나로 이미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주야간보호센터에서 하는 인지 프로그램 활동으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신다. 아버지가 이런 소질이 있으셨구나 할 만큼 완벽한 작품들을 만드시고 그 작품으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계신다.
기적 같은 선물 요양보호사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재취업 지원으로 요양보호사 공부를 할 자격이 된다고 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엄마의 요양 보호를 위해서다. 코로나가 아니고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엄마 걱정으로 마음만 아팠을 텐데 정말 기적같이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땄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던 공부 요양보호사다. 똑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하시고 다정다감했던 엄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잘 안 하신다. 손주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안부 건네던 할머니는 이제 없다. 기억이 왜곡되고 잊히고 때론 엉뚱한 소리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엄마가 대신 왔다.
그러나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순 없다. 왜냐하면 엄마는 여전히 우리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노화로 인한 질병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전에 찾아간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해 준다. 세탁기 안에 든 옷을 꺼내 애벌빨래를 하는데 엄마 속옷에 분비물이 묻어있다. 예전의 나였으면 슬픔과 우울함이 동시에 일어났을 텐데 요양보호사 공부 덕분에 엄마의 노화를 이해하고 나니 지금까지 잘 견뎌준 엄마가 감사하다.
그동안 이런 분비물을 앞이 보이지 않는 엄마가 어떻게 처리했을까? 너무 놀라웠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무화과가 너무 물러 못 먹을 것 같아 버리고 너무 한꺼번에 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고 생각한다. 예전의 우리 엄마가 아니다.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것이 나를 가장 편하게 하는 길이다.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부모님
부모님은 참 많이 싸우셨는데 엄마는 싸우지 않았다고 기억하신다. 엄마는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하신다. 너희들 공부하고 자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신다. 나도 엄마를 아프고 힘들게 했을 텐데 좋은 딸로만 기억해 주고 계신다.
엄마에게 나는 소중한 딸이고 귀한 딸이고 항상 엄마 편이고 못난 엄마 때문에 골병들게 고생하는 딸이라 해서 울컥한다. 지금 엄마는 손주 생일 날짜는 알지만 그날이 오늘인 줄을 모르신다.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도 괜찮다. 예민한 엄마가 이제 덤덤해져도 된다. 우리가 또렷이 기억해 주면 되니까.
아버지는 내가 요양보호사 공부하면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매일 일기 쓰기를 권했는데 너무나 잘 쓰고 계신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일기장 검사를 한다. 그 시간을 너무 소중히 여기신다.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만드시는 작품은 모두가 놀랄만한 작품들이다.
치매 진단 후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날마다 본다. 가끔 아버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골을 내셔서 나를 경기하게 만드시지만 "사랑해요"라는 내 말에 무척 어색해 하시기도 한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상황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꿀 수는 있다. 치매 걸린 부모님의 새로운 점을 날마다 선물처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 태도를 선택하기로 했다.
부모 돌봄을 나라가 인정하는 가정 요양 보호
내가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병든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가정 요양 보호를 적극 추천한다. 부모와 토닥거리며 씨름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언짢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로 위로받는 것은 부모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엄마의 요양 보호를 하면서 폐렴에 코로나에 지독한 몸살을 하기도 한다.
항상 웃는 일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는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한다.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로 사는 시간이 부모님이 내 부모로 살아주신 시간보다는 결코 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엄마랑 셀카로 같이 사진을 찍는다. 활짝 웃으라고 그리고 기도한다. 우리 부모님이 걸을 수 있고 대소변 가릴 수 있고 식탁에 앉으셔서 식사하실 수 있다가 하늘나라에 가시기를 말이다.
아버지와도 일주일에 한 번 셀카를 찍고 작품도 찍고 책으로도 엮어 드린다. 치매 진단 후 내가 기쁜 맘으로 할 일이 많은 것에도 감사한다. 내 자녀에게도 부모에게 잘하는 괜찮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기도 하다.
무화과는 80년 동안 쉬지 않고 자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 한다. 무화과 껍질은 수수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 안에 밝고 풍성하면서 달콤하고 연한 속살이 감춰져 있다. 우리 부모님도 80년 동안 쉼 없이 사시고 무화과 열매 같은 속살을 이제 남기고 계시는 중이시다.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이들에게만 보여주는 선물이다. 무화과 열매처럼 겉은 수수하고 보잘것없이 늙고 병들었지만 그 속은 삶의 이야기로 너무 꽉 차서 잊어 가시는 부모님을 보물찾기하듯 새로움을 찾아가는 감사의 시간임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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