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4년 100달러대 고유가 지속
이란 제재·리비아 붕괴 3년 공급 뚝
예고된 아랍 공습·전쟁 말리는 미국
美 셰일 생산 풍부·OPEC 감산 완화
“원유 공급 차질 없으면 유가 안정세”

전 세계 고물가를 견인하는 국제유가 이슈가 또다시 터졌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중동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이란 고위급 지휘관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영공으로 200여 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이 이에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달래고 있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국제유가는 잠잠하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직후 유가가 4% 이상 급등했던 때와 다르다. 당시에는 이란 참전 여부에 대한 불안감에 기름값이 급등했지만 정작 이란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문가는 예견 가능한 일이 일어났고 무엇보다 석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0여 년 전 아랍의 봄으로 전 세계가 석유 부족에 시달렸던 것처럼 또다시 원유 사용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이다.
“이란이 사전에 미국뿐 아니라 주변국에 공습을 사전에 예고했어요. 지금 미국은 이스라엘 보복 공격을 뜯어말리고 있고요. 시장에서는 ‘짜고 치는 것 아니냐’ 의심할 정도로 중동 불안이 생각보다는 확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15일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란 갈등과 유가 추이와 관련한 해외 시각과 분위기에 대해 이같이 전했다. 한국 시각으로 오전 7시 WTI가 거래를 시작하는데 전날인 일요일에 이벤트가 발생하면 가격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전문위원은 ‘거의 반응이 없다’고 봤다.
본지가 세계 3대 유가에 대한 최신 가격을 분석해 보니 이날 개장한 WTI와 브렌트유는 하락세를 보인다. 이날 WTI 선물가격(5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 종가(85.66달러) 대비 0.81달러(0.95%) 하락한 배럴당 84.85달러를 기록했다. (오후 4시 15분 기준) 같은 시각 브렌트유(6월 인도분)도 전 거래일 종가(90.45달러) 대비 0.45달러(0.50%) 하락한 배럴당 90.00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두 개 유종 가격 그래프는 공통적으로 우하향했다. 두바이유는 아직 개장하지 않았다.

“이란하고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미사일 이외에 보병으로 지상에서 맞붙을 수는 없거든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지 않기 때문에. 어쨌거나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난주 금요일서부터 힘을 얻는 상황이고 달러 강세는 자연스럽게 딸려 나오죠. 이런 상황 모두 감안해서 유가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보복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 시장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연쇄 보복에 나설 경우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와 시장 불안심리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 갈등이 고조돼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때 국제원유가격은 배럴당 200달러 도달은 시간문제라는 예측도 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비교할 때 헤비급 국가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 결정에 따라 전 세계 물가와 경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다르게 산유국이기도 하다.
이 해협으로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유를 수출한다. 하루에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량이 2000만 배럴이 넘는데, 이란이 수문장 역할을 한다. 전 세계 하루 원유 공급량의 20% 규모다. 이 때문에 중동 이슈와 관련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야기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다만 해협과 관련해 이해 당사국이 많아 이란 입장에서도 이곳을 막는 것은 부담스럽고 이 때문에 봉쇄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

“그걸 막겠다는 건 전쟁을 하자는 얘기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서방 선박을 나포한다든지 지뢰를 설치한다든지 그렇게 되면 항해 안전 원유 수송로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가가 또 크게 오를 수 있겠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불안이 지속하면서 이로 인한 국제 유가의 단기 급등 가능성은 높지만 중기적으론 국제 유가 강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한다. 지금으로선 에너지원 공급이 풍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셰일은 생산이 괜찮은데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100만 배럴, 200만 배럴 늘릴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OPEC 같은 경우 그동안 워낙 감산을 오랫동안 지속해서 여유 생산 능력이 많다고 보여요. 이란을 제외하고도 하루 660만 배럴 생산할 여력이 있는데 이 규모면 세계 공급의 거의 5% 수준이거든요. (지금 감산하고 있다 하더라도) 유가가 높을 때 빨리 돈 벌어놔야지 감산을 지속한다는 건 내부적으로 그렇게 못할 거예요. 중동 산유국 입장에선 일종의 국민들에 대한 배임이죠. 100달러대까지 오르게 되면 원유 공급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공급 대비 수요는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고유가를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요인이다. 미국의 셰일 붐으로 과거에 비해 원유 생산이 가격에 반영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수요는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등 대체재 확대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수요가 둔화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10여 년 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원유 공급 부족 사태가 반복하기란 쉽지 않다. 당시는 수요가 석유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뿐더러 역사적 사건으로 공급이 크게 줄면서 3년간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를 지속했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의 일이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해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한 반(反)정부 시위의 통칭이다. 이 여파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는 오랜 기간 이어진 장기 집권 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
“아랍의 봄 때문에 리비아 당시 정부가 무너졌었고 그다음에 이란 핵 개발 프로그램 때문에 서방 제재가 시작됐었거든요. 그때는 실제로 시장에서 하루 공급이 거의 200만 배럴 이상 사라졌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2~3년 동안 100달러 이상 고유가가 지속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원유 공급이 그 정도 사라지게 되면 고유가가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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