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나이 들며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는 관계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처럼 만났다

50대가 되면 더 자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조금 더 성장한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각자 하는 일이 있고 생활 반경이 달라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봄이 가기 전에 한번 보자’, ‘시간 될 때 만나서 같이 가보자’는 식으로 애매한 약속만 나눌 뿐이다.
그나마 SNS에 친구들이 모여 있는 대화방이 있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기도 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면 이모티콘을 남기며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래도 직장생활과 육아로 정신없었던 30, 40대와 다른 점을 찾자면, 대화방 안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더 잦아졌고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면 ‘고마워’, ‘축하해’, ‘너무 멋진 일이다’ 등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도록 집중해 글을 남긴다는 것이다. 가끔은 고등학교 시절 그랬던 것처럼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몇 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
친구의 생일날 아침 대화방 안에서 한창 축하를 나누던 중 다른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얼굴 한번 보자. 이번 주 이후 각자 가능한 날 이야기해 봐, 빠른 날짜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남이 정해졌고 반년 만에 대화방 속 친구들이 실제 테이블 앞에 모이게 됐다. 명색이 생일파티인지라 친구들은 저마다 선물을 들고 등장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한 선물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나온 친구들 모두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 모인 친구 모두가 말이다.
건강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며 홍삼 엑기스와 꿀 등 건강식품을 가지고 온 친구도 있었고, 보랭과 보온 기능이 좋은 도시락 가방을 챙겨와 회사 갈 때 챙겨가라며 손에 쥐어 준 친구도 있었다. 케이크와 와인을 챙긴 친구, 색깔이 다른 곰 인형을 하나씩 나눠 준 친구까지!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선물을 풀며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동안 소리 높여 인사를 나눈 후 지난 6개월간 각자에게 벌어진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영화 <북 클럽: 넥스트 챕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코로나로 2년여간 격리 생활을 하며 줌으로만 얼굴을 마주했던 네 명의 친구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오십 년의 우정을 쌓아온 이들은 그 자리에서 비혼주의자 비비안의 약혼 소식을 듣게 되고, 젊었을 때처럼 ‘싱글 파티’를 하자며 다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독서 모임을 하는 네 명의 중년 여성들이 과감한 연애소설을 읽게 되면서 잊고 있던 욕구와 감정을 되돌아본다는 전작 <북 클럽>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기에 이들의 다음 이야기를 발견한 게 무척 반가웠다(다이앤 키턴, 제인 폰더, 캔디스 버겐, 메리 스틴버겐 등 할리우드 최고 시니어 여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본다는 즐거움도 주는 영화다).
과감한 연애를 통해 자신이 원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걸 찾는 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었던 친구들이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어떤 공감대를 전할지 궁금했다. 로마에서 베네치아, 토스카나까지 아름다운 이탈리아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번 영화에서도 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며 운명이 아닌 자신이 선택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마주하게 된다.
오랜 기간 서로를 봐왔기에 각자의 인생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친구들, 그렇기에 서로에게 전하는 말의 진의를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친구들이라는 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날 만난 친구들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버지가 수술을 받으셨고 재활 중이셔서 한동안 경황이 없었다는 나의 근황을 듣자마자 친구들은 각자의 경험을 전하며 단계별로 가봐야 할 병원과 요양의 방법, 지금 중요한 돌봄이 어떤 건지, 필요한 물건은 무엇인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가면서까지 알려주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걸 알게 해 준 것도 고마웠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든든했다. 이해하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오랜 친구들이 있다는 건 나이가 들었을 때 얻게 되는 선물 같다. 영화에서처럼 친구들과 먼 여행은 할 수 없지만 봄이 가기 전 가까운 곳에 등산이라도 가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날짜를 정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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