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관심 분야의 좋은 글과 사진이 담긴
잡지를 읽는 것은 특별한 여가 활동

읽고 싶었던 잡지 몇 권을 구입해 비행기에 오르는 그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Haberdoedas on Unsplash
읽고 싶었던 잡지 몇 권을 구입해 비행기에 오르는 그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Haberdoedas on Unsplash

오랜만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잡지를 만들 때는 각종 취재를 위해 1년에 두어 번은 공항으로 나섰는데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는 특별히 관련 업무가 없었다. 출장 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될 경우는 더 즐거웠다. 끊임없이 울리던 전화와 문자는 물론 각종 미팅과 마감 일정 등으로 빽빽하게 적힌 스케줄을 그 시간만큼은 완전히 ‘오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휴대폰을 끄고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여행이 아닌 출장이니 가족을 챙겨야 하는 일도 없고, 정말 완전하게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한 건 아니었다. 놓치고 보지 못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잡지 서너 권을 읽는 게 다였다. 특히 잡지를 읽는 게 중요했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조용한 그 시간,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글과 사진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힐링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언제나 탑승 전에는 공항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잡지를 구매했다. 해외 공항 서점에는 세계 각국에서 발행된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전시되어 있었기에 늘 그 앞에 서서 어떤 잡지를 사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고는 했다.

잡지 만드는 사람이 시간이 날 때 잡지를 읽는 게 뭐 그리 특별한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일로서 잡지를 펼칠 때는 내가 만드는 잡지와 관련 있는 소위 경쟁지나 업무에 참고할 만한 잡지를 검토하게 되는데,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그 시간에는 일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혹은 새로운 콘셉트로 제작되어 흥미로워 보이는 다양한 분야의 잡지들을 골라서 제대로 집중해서 읽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배우의 인터뷰가 실린 <Rolling Stones>나 <Vanity Fair>를 구입하기도 하고, 건축잡지, 미술잡지, 때로는 시사지, 경제지, 과학잡지도 가방에 담았다. 게이트가 열려 좌석을 찾아 들어갈 때 승객용으로 비치된 잡지 몇 권을 자리로 챙겨왔던 것은 물론이다(요즘은 승객들이 휴대폰이나 태블릿 등 개인용 디바이스로 콘텐츠를 보기에 기내에 비치된 잡지들은 대부분 사라졌는데 잡지 마니아인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면 아이가 사탕을 까먹듯 기대에 부풀어 한 권씩 차례로 잡지를 열었다.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내가 관심을 가졌던 그 분야에 몰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이다. /THE5TH on Unsplash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내가 관심을 가졌던 그 분야에 몰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이다. /THE5TH on Unsplash

이번에도 오랜 시간 잡지를 읽었다. 우선 좌석 앞에 꽂힌 대한항공 기내지부터 시작했다. <모닝캄>은 한 때 내가 편집장으로 제작에 참여했던 잡지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허투루 읽히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제목을 읽고, 페이지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감상하고, 글을 읽고, 소개된 그곳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기사를 읽고 난 후 기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정보와 공감, 때로는 영감까지 얻게 될 때는 기자와 함께한 스태프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페이지를 위해 그들이 고민하고 취재하고 의논했을 그 모든 과정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번 호 특집 기사는 K-푸드인데 ‘K-팝과 K-뷰티를 너머 한류의 주역이 된 한식’을 파인다이닝부터 서울의 유명한 노포, 명사들이 추천하는 음식과 식당까지 한국인만의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구성으로 기획됐다. 정갈하게 찍은 사진과 꼼꼼한 취재에 감탄하며 소개한 몇 곳은 시간 내어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잡지를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만나, 글의 내용에 공감하며 필요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물론 요즘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을 읽으며 감탄하고 교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이 잡지를 넘기는 아날로그 활동은 잡지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되새기며 각자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도록 물리적 시간을 만들어낸다. 빠르게 바뀌는 온라인 화면이 아니라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콘텐츠를 천천히 읽어갈 수밖에 없는 물질적 특성이 프린트된 글과 사진에 조금 더 몰두하게 하기에, 받아들이고 느끼는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잡지는 특정 분야에 집중해 그 분야에 식견을 가진 에디터의 감각으로 큐레이션 된 여러 콘텐츠를 모아놓은 책이 아닌가. 그러니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잡지를 만나보는 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여가, 좋은 취미활동이 될 수 있다.

잡지를 만들어왔던 사람의 입장에서 잡지를 좋아하는 애호가의 입장으로 바뀌어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행기 안 좁은 좌석은 그런 몰입을 하기에 적당한 자리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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