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 맞물려 골디락스 장기화
재계와 언론에선 차기 Fed 의장으로 거론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 /AP=연합뉴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 /AP=연합뉴스

미국 경제의 골디락스(고성장임에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상태)를 안착시킨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시 제롬 파월 의장을 재지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트럼프의 보호 무역주의에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사람(mensch)이란 칭찬을 받은 바 있는 월러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조명되고 있다.

10일 미국 재계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통상적인 실업률 급증 없이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릴 방법을 제시한 월러의 '연착륙 달성 메커니즘에 관한 이론 및 실증 분석'(Responding to High Inflation, with Some Thoughts on a Soft Landing)이 화제다. 

지난 2022년 5월 30일 독일 괴테 대학교에서 보고서가 발표된 당시 경제학계에선 실업률을 낮추려다 보면 물가가 오르고, 반대로 물가를 낮추려다 보면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필립스 곡선을 거스르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대에 실업률은 0.5%대의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 2020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기에 앞서 언급한 발언도 월러의 연착륙 메커니즘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시 월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시장이 매우 타이트(tight: 기업의 구인 수에 비해 노동자의 구직 수가 작다는 의미)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통화 및 재정정책 긴축으로 노동수요가 감소해 일자리 공석이 줄어들더라도 실업률 상승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2021년 경제가 팬데믹에서 탈출하면서 고용주들이 근로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자리 공석이 급증했다. 이를 근거로 파월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기에 앞서 5월 FOMC 기자회견에서 "빈 일자리(vacancies)가 이례적으로 매우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실업률을 높이지 않고도 빈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로가 있다"고 말했다. 

즉 정책 효과로 일자리 공석률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고용과 실업에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으로 파월 의장이 자신 있게 매파적 정책 결정을 내리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은 당시 "노동 수요가 완화되면 빈 일자리가 줄어들고 노동 공급과 수요를 현재보다 근접하게 만들어 경기 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임금 인상률 억제와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노동시장을 보면, 실업자 1명당 1.7명 이상의 비어 있는 일자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연준의 정책 수단이 잘 작동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게 한다면 동 비율이 1 : 1 정도로 줄어들면서 임금 상승 압력과 인력 부족 현상이 완화될 것이란 것.

월러는 이를 '취업률=공석자 수/실업자 수'의 함수로 나타냈다. 당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비롯한 비둘기파들은 "월러가 정책 실수로 돼지에게 립스틱을 바른다"고 비난했다. 실업의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월러의 예상은 맞아떨어져 미국 경제는 골디락스를 맞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그를 차기 연준 의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위쪽 그래프에서 회색 막대는 해당 연령의 미국 인구다. 빨간색 수직선은 정년 은퇴 연령인 65세를 표시하고 파란색 막대는 연령별 예상 퇴직자 수다.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색 그래프는 실제 경제참가율(LFPR)이고 빨간색은 고령화에 따른 베이비부머 은퇴를 제외한 경제참가율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위쪽 그래프에서 회색 막대는 해당 연령의 미국 인구다. 빨간색 수직선은 정년 은퇴 연령인 65세를 표시하고 파란색 막대는 연령별 예상 퇴직자 수다.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색 그래프는 실제 경제참가율(LFPR)이고 빨간색은 고령화에 따른 베이비부머 은퇴를 제외한 경제참가율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트럼프에 반대 의견 내고도
훌륭한 사람이라 평가받아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양적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에 몰입해 온 트럼프는 2019년 연준이 금리를 더 빨리 인하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상태였다. 그렇게 추천받은 인물이 월러였는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상충하는 자유 무역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다는 것.  

다만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서머스는 최근 한 연설에서 "확실히 지금까지의 데이터는 월러의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만약 공석률이 안정화되는 대신 4.5% 아래로 떨어지면 실업률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고 한다.

월러의 연착륙 메커니즘을 뒷받침해 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닥쳐온 미국 경제의 '은빛 쓰나미'였다. 미국 인구에서 퇴직 근로자의 비율은 2018~2019년 평균 18%에서 2022년 말 거의 20%로 증가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동시장 이탈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경제활동 참여율(LFPR)은 현재 62.5%로 큰 변화가 없었다.

대퇴직시대(the Great Resignation)로 일컬어지는 노동자 우위 시대가 현실화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는 근로자를 위해 고용주들은 임금인상과 각종 혜택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게 미국의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를 기록 중이며 적어도 모든 베이비부머가 65세 정년을 맞는 2030년에까지 '별의 순간'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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