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결산 기준 운영수지율 44.5%"
"시민 많이 이용하는 시설 자체로 가치"

인천 서구 연희동에 사는 김종순 씨(76)는 지난여름 동생의 권유로 맨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에워싼 '아시아드 맨발 산책길'이 김씨의 운동 장소다. 주 경기장 앞 흙길이 걷기 좋다는 소문을 들은 동네 노인정 사람들이 지난 7월 다 같이 나와 산책을 한 게 발단이었다. 반년도 안 돼 이들은 회원 수가 300명이 넘는 어엿한 '인천 아시아드 경기장 맨발 걷기 동호회'가 됐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 모임을 긍정적으로 본 인천시설공단은 맨발 이용자와 일반 이용자 모두를 위한 마사토 길을 새로 닦고, 세족장이나 신발장 같은 편의시설도 설치했다.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은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생겼다. 4700억원을 들여 지은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은 매년 운영 적자를 기록하며 '혈세 먹는 하마'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천시는 주 경기장에 영화관, 카페, 예식장, 실내골프장 등 상업시설을 유치해 임대수익을 얻어 손해를 메우고 있다.
카페와 예식장 사이에 있는 작은 공실을 제외하면 현재 거의 모든 상업시설 공간이 차 있다. 인천시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현재 주 경기장 내 거의 모든 시설이 임대됐다면서도 "2022년 결산 기준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의 운영수지율은 44.5%"라고 밝혔다. 운영수지율은 시가 투입한 운영 비용에 대한 경기장 운영 수익의 비율을 뜻한다. 운영수지율이 50% 미만이라는 건 시가 투입한 예산 절반 이상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인천시설관리공단(현 인천시설공단)의 자문위원이었던 김남기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은 "지역에서 가장 수요가 컸던 예식장을 유치한 건 성공적"이라면서도 "상암경기장처럼 대형마트를 유치하지 못한 게 결정적 실패"라고 말했다. 대형마트는 공공경기장이 높은 임대료를 받고 유동 인구를 많이 끌 수 있는 시설이다.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은 국내 월드컵경기장 중 유일하게 매년 운영 흑자를 냈다.
김 회장은 "세금으로 만드는 시설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이 이용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운영 적자를 내더라도 시민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예식장 등 영리 목적시설 말고 주민들을 위한 공익적 시설도 유치해야 한다는 자문에 따라 시에서는 스포츠센터 유치도 계획했지만, 아직 주 경기장 건물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스포츠센터는 없다. 대신 주 경기장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연희크리켓경기장에 '아시아드스포츠클럽'이 있다. 사단법인 공공스포츠클럽인 아시아드스포츠클럽은 축구, 야구뿐만 아니라 크리켓 같은 비인기 종목 강좌도 개설했다.

연희크리켓경기장뿐만 아니라 선학 국제빙상경기장, 선학 하키경기장, 남동 럭비경기장 등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인천시가 신설한 경기장들 모두 비인기 종목 활성화에 보탬이 됐다.
선학 국제빙상경기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빙상장이다. 빙상장은 그 수도 많지 않고 대관도 꽉 차 있어 빙상종목 운동을 하려면 기존에 있는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해야 했다.
하지만 선학 빙상장이 생기면서 새로운 동호회가 10여 개 더 생겼다. 필드하키를 목적으로 신설된 선학 하키경기장은 주중에는 전문 선수들이 훈련하는 공간으로, 주말에는 일반 시민들이 대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동 럭비경기장은 현재 현대글로비스 럭비단과 대한민국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현대제철 여자 축구단 레드엔젤스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을 앞둔 지금 이용창 인천시 의원은 지난 3월 인천시의회 본회의에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은 약 47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매년 평균 24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주 경기장을 반려동물 종합테마파크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시의회에서 신설경기장 16곳이 종합적으로 어떻게 사후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의나 앞으로의 운영 방안에 대한 정책 제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시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는 인천연구원은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6년 전인 2008년 '아시아경기대회 경기장 사후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신설경기장 각각의 시설이나 입지의 특징에 적합한 사후 활용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인천연구원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경기장 사후 활용 실태 조사는 아직 하지 않았다. 신설경기장의 운영 주체 역시 제각각이다. 인천시 내 공공경기장들을 관리하는 주체는 현재 인천시설공단과 인천광역시체육회로 이원화돼 있다. 심지어 선학국제빙상경기장은 체육시설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한 민간 업체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기장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시민들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경기장이 어떤 공간이 돼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맨발 산책길을 거닐며 김종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을 위한 공간이죠. 우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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