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보는 세상]
총학생회 없어도 불편함 못 느껴
소통 창구 부재·낮은 접근성 원인
12월 4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SK미래관 1층 라운지의 총학생회 선거 기표소 앞에는 공부할 자리를 찾는 학생들 수십 명이 서성였다. 시험 기간을 맞아 라운지는 북적였지만 바로 뒤편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은 뜸해 총학생회 지역선거관리위원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고려대 재학생 김강민 씨(23) 또한 투표소를 보고도 관심이 생기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사실 그는 2019년에 입학한 이래 총학생회가 없는 학교를 여러 해 경험했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는 2020학년도부터 3년간 총학생회를 정상적으로 구성하지 못했다. 2020학년도 선거 투표율이 개표 기준인 33%에 미달하여 무산된 이후 2021년까지 3차례의 재선거는 각각 선본 경고 3회로 인한 후보자 자격 박탈, 투표율 미달, 후보자 없음으로 모두 무산되었다. 2022학년도 총학생회가 당선되었으나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하고 총학생회장이 성 추문으로 무기정학 징계를 받으며 5개월 만에 다시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서기도 했다. 김씨는 "학생 개인으로서는 총학생회가 없어도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023년 구성된 고려대 총학생회는 행사, 복지, 재정 사무, 교육, 시설, 소통 등 다방면에 걸쳐 공약을 내걸었다. 기존에 일부 구역에서 시야가 제한되었던 대동제 무대 구조를 개편했고, 드롭제도 도입 및 GPA 환산식 개편을 진행했다. 건의 사항을 받기 위해 총학생회 카카오톡 채널 또한 개설했다. 총학생회장 박성근 씨(26)는 기존 진행자를 모집해 선발하는 대동제 무대의 진행을 일부 맡고, 총학생회장 직통 채팅방을 개설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총학생회의 노력에도 학생들은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SNS를 통해 총학의 소식을 받아보면서도 총학생회장 직통 채팅방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총학이 SNS에 업로드하는 자료들을 직접 검색해 찾아본 적이 없었다.

계속되는 대학 학생회 구성 실패가 문제라고는 하지만 정식 총학생회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올해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입학한 조영인 씨(22)는 입학 후 한 학기가 끝나도록 총학생회의 부재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평소 활발하게 SNS를 이용하는 조씨는 주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학교 소식을 찾아보면서도 총학생회 계정은 팔로우하지 않았다.
올해 연세대 총학생회 비대위는 대동제, 고려대와의 정기전, 연고제 등 본래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사업들을 취소 없이 모두 운영해 냈다. 산하에 혁신위원회를 새로 만들었고, 저렴한 학식을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등 새로운 학생복지 사업도 학생회 없이 도입했다. 교외에서도 연세로 대중교통지구 폐지 건과 R&D 예산 삭감 건 등에 대한 학생 의견을 수렴하여 대학생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목소리를 냈다.
비대위 체제에서도 학생 자치 기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자 조씨는 계속되는 대학 학생회 구성 실패가 문제시되는 이유를 되물었다. 그는 "학교생활 전반적으로 불만이 거의 없었는데, 총학이 있었다 해도 지금에 비해 크게 좋은 점이 있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재학생 최연준 씨(21)는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로 총학 정책에 대한 접근성의 아쉬움을 꼽았다. 그는 이른 건물 폐쇄 시간, 불친절한 장학제도 공지 등 사소한 불편을 겪었지만 학생회를 통한 건의를 고려하지 않았다. 최씨는 학생회 건의 절차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랐다. 최씨 또한 지난 11월 진행된 총학생회 선거에 투표하지 않았다. 그는 "총학생회 선거가 멀게 느껴지는 건 총학이 있더라도 학생들과의 소통 창구가 거의 없어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대변하기 위해 있는 총학생회는 점점 대학생들의 인식에서 멀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 [청세] 20대 '영양제 콜렉터' 되다···바쁘고 피곤해 '선택 아닌 필수'
- [청세] 편의가 낳은 무질서, 대학 시험 기간 24시 열람실은 '혼란'했다
- [청세] "작업의 원천은 분노"···종이 조각가 신민, 여성·노동자에 건네는 위로
- [청세] 나날이 성장하는 韓 웹툰 산업···'분업'이 비결
- [청세] "안 입는 옷 줄게, 새 옷 다오"···의류 쓰레기 대란 맞서는 '공유 옷장'
- [청세] 더 이상 선수가 아닌 학생들, 이제 모든 건 자신의 몫
- [청세] 옷값 비싸 초년생 운다···'중고' 사고 '가족 옷' 빌려입기도
- [청세] 맞팔 500명인데 연락처는 0개···MBTI는 밝혀도 전화번호는 'NO'
- [청세]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혈세 먹는 하마'인가 시민 위한 공간인가
- [청세] 졸업 앞두고 길 잃은 대학생들···'어떻게 살 것인가'
- [청세] '현금 생활' 도전하는 20대, "소비욕 줄이고, 생활 습관도 바뀌었어요"
- [청세] 장애인도 편한 '어댑티브 패션' 만드는 기업들···험난해도 '킵 고잉'
- [청세] 독거노인 10명 중 7명 빈곤···"일자리 뺏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