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명백한 소비자 복지 훼손"
기업 배려‧맞춤형 교육 必

# 평소 친구들과 다양한 카페를 탐방하는 게 취미인 75세 한모 씨는 마침 동네에 유명 카페가 생겨 방문했더니 대기가 30팀 이상이었다. 한씨는 현장엔 인파가 없고 오픈 시간에 맞춰갔는데도 대기가 많아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주 소비층인 젊은이들은 사전에 앱으로 원격 줄서기를 한 상태였다. 앱을 전혀 몰랐던 한씨는 '주류 소비자'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에 서러움을 느꼈다.
키오스크에 겨우 적응한 고령층 소비자들이 최근에는 모바일 앱 활용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디지털 기기 이용에서 나아가 사전에 앱으로 예약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업계를 막론하고 사전에 모바일 앱을 통해 예약받거나 원격 줄서기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다수 식음료 기업은 각종 할인 행사와 메뉴 주문을 사전에 모바일 앱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업계에선 기차‧시외버스 현장 예매 시 원하는 좌석에 앉지 못해 모바일 예매가 필수며, 택시도 앱으로 예약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최근 카페‧베이커리 기업들은 모바일 주문 서비스 '패스오더'를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패스오더 앱에서 제품을 미리 주문하고 별도의 대기 시간 없이 제품을 수령할 수 있다. 할인 이벤트도 앱을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약‧웨이팅 플랫폼 '캐치테이블'‧'테이블링'은 파인다이닝부터 인기 카페, 맛집까지 예약 및 원격 줄 서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병원까지 줄 서는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면서 고령층이 의료 서비스 제한까지 겪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022년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가정의학과 이혜진 교수 연구팀이 국내 65세 이상 79세 미만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앱을 사용하는 비중은 높았으나 스스로 활용하는 데는 미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 중 87.1%는 앱을 사용하고 있으나 63.2%는 스스로 앱을 설치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54.9%는 배우자나 동거인, 자녀가 앱 설치를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11월 조사한 '5060 시니어 디지털 이용 행태'에 따르면 식당, 카페 방문 시 선호하는 주문 방식은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으로 주문'(70.5%), '자리에서 직원을 불러 주문'(67.5%), '키오스크 주문'(51.1%)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휴대전화로 주문'은 20.4%였다.

이처럼 고령층 소비자는 키오스크에 적응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모바일 온라인 서비스 대란에 또다시 소외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모 씨(79세)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KTX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당일 현장에 갔는데 좌석이 없어 입석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다리가 불편해 입석은 힘들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헛걸음친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는 자식이나 손녀한테 미리 예매해서 카톡으로 전달해달라고 하고 있다"며 "애들도 바쁠 텐데 매번 부탁하기도 미안해서 눈치 보인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제 카페나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데는 적응했다. 자녀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주문해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주눅 든다"라고 호소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지에 "현재 외식‧의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업계가 예약제로 바뀌고 있다. 현대인은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걸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느낀다"며 "그런데 노년층은 다르다. 이제 겨우 오프라인에서 키오스크를 누르는 건 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모바일 예약은 또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본적인 소비자 복지가 명백히 훼손되고 있다. 고령층 소비자가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거다"라며 "모든 게 온라인화되는 현 상황은 노인을 죽은 목숨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자체‧정부‧기업 차원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교육해 그들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에서 동사무소, 주민센터 등에서 디지털 기기 관련 교육을 운영하는 경우가 꽤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거나, 교육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노인들도 있다"며 "일본처럼 접근성 좋은 편의점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주기적으로 시간을 정해 순회 교육‧상담을 하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층은 '만나서' 가르쳐주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편의점이 워낙 많다 보니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선 편의점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상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도 민간 기업이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접근성이 좋은 장소를 찾아서 해당 기업에 일정 부분 지원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제 키오스크는 만연해 있다 보니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는 시니어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오프라인 서비스라면 KTX 예매나 병원 예약제 등 모바일 앱(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면서 또 다른 장벽이 생긴 거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는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므로 적응해야만 한다"라며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은 노인들도 이용하기 쉽게 앱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고령층 소비자들도 지속해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층에 새로 진입하는 세대와 현재 후기 고령층은 상당히 다르다. 세대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며 "노인 대상 교육만 제공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당장 100%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단 적응이 필요한 세대를 위해 오프라인 서비스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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