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노인' 용어에 혐오감도↑
고령자 늘어나며 재정부담 증폭
주요국, 공적연금 수급연령 상향

부정적 '노인' 용어에 혐오감도↑고령자 늘어나며 재정부담 증폭주요국, 공적연금 수급연령 상향
부정적 '노인' 용어에 혐오감도↑고령자 늘어나며 재정부담 증폭주요국, 공적연금 수급연령 상향

"나이 예순둘에 선생님이 됐어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네요. 때로는 어르신이라고도 불려요. '노인'보다는 낫죠. 난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불리는지 모르겠어요. 기대 수명도 길어지는 와중에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일도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없다'고 사회가 매장하는 것 같아요."

최근 ‘연금충’(蟲), ‘틀딱충’ 등의 노인 혐오 표현이 생겼다. '일은 안 하고 연금만 받아먹는 노인들' 혹은 '틀니가 서로 부딪쳐 딱딱거리는 소리만 들린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고령자를 부르는 호칭에 대한 갑론을박이 최근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고령 기준 연령 상향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99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공모로 '노인' 대체어로 '어르신'이 선정됐다. 이마저 반발에 부딪히는 형국이다. 65세 이상 경로 우대 승객이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도록 하자 항의가 이어졌다. "늙었다고 망신 주는 거냐", "부끄러워서 지하철도 못 타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결국 한 달도 안 돼 안내 음성에서 어르신은 빠졌다. 지난해 10월 기독교 단체 하이패밀리가 성인 17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2%의 몰표를 받은 노인 대체 호칭은 '장청년(長靑年)'이다. 하이패밀리 측은 노년의 ‘老’(늙을 로)를 ‘路’(길 로)로 바꿔보자는 제안도 내놨다. 젊은이들의 '길'이 되는 세대라는 의미다.

지난달 경기도의회는 65세 이상 도민을 ‘선배 시민’으로 명시한 조례를 공포했다. 노인 대체 명칭이 지방자치 조례에 명시된 첫 사례다. 나이가 아니라 경험을 강조한 것이다. 65세 미만은 ‘후배 시민’으로 정의했다.

도의회 관계자는 "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노인들이 선배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참여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피부양자 늘수록 경제 가능 인구 부담↑···연령 상향이 '해결책'

지난해 일본 노화학회와 노인병학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노인의 보행속도와 악력'에 따르면 2002년도 75세가 1992년도 65세와 보행 속도와 악력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이 스스로 늙었다고 인정하는 노인 연령도 70세에서 75세로 상향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지표체계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인구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2년 82.7세로 약 20년 늘어났다. 기대수명은 여자가 남자보다 길다. 2022년 현재 여자의 기대수명은 85.6세로 남자의 79.9세에 비해 5.7년이 길다.

노인복지법에서 노인은 만 65세를 기준으로 한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기초연금이 개시되며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 노인복지시설 이용,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 국가 예방접종, 철도나 국·공립공원 등의 경로우대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2025년부터 10년마다 한 살씩 올리자는 점진적 상향 안이다. 올해 초 노인 기준 연령을 만 70세로 올리는 방안에 대한 한국갤럽 설문 조사(1002명)에 따르면, 찬성 60%, 반대 34%로 나타났다. 2015년 조사에서 찬성 46%, 반대 47%로 팽팽했던 것과 대비된다.

시니어 연구협회는 2022년 펴낸 '고령층 연령 상향과 경제 가능 인구'에서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약 70%가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한다"면서 "40년간 노인 인구가 매우 빠르게 증가해 가장 높은 피부양 인구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봤다. 

이어 "건강 개선으로 근로 능력이 향상됐음에도 현재 노인연령 기준에 따라 노인복지정책을 마련하면 노인 인구 급증은 제한된 예산 한도에서 1인당 지원 금액을 더욱 낮출 것"이라며 "노인 복지 예산 확대를 도모할 수 있으나 예산 확대는 조세 부담 증가를 의미하고, 현실적인 재원 확대 규모는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고령층의 경제 활동 지속성을 고려한 노인연령 상향 조정을 통해 생산 가능 연령 인구 확충 및 피부양 고령 인구 축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노인 연령은 생산가능인구의 연령 상한이며, 피부양 고령 인구의 연령 하한을 동시에 의미한다"며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 연령을 상황 변화에 맞춰 1세 단위로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국민연금·후생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다. 정년은 기업이 정년 폐지, 정년 연장(65세까지), 계속 고용제도(65세까지 계약직으로 재고용)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노령·유족·장애인 연금(OASDI)의 수급 개시 연령을 66세 이상으로 규정했고, 정년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앴다. 독일은 법정 연금보험 등의 공적연금(GRV)의 수급 개시 연령을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상향하고 정년 역시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방침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 보고서에서 이같이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은 단지 복지 재정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한 노인들의 행복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 세대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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