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유치원과 학교 운영난 경제 침체 우려
성장 둔화에 녹스는 인프라 잠재 성장↓
韓 국내 총생산량 48% 민간 소비 점유
3D업종 유지·양질 두뇌 유입 위한 이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한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은 아카데미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화제작이다. 머지않은 미래인 2027년을 배경으로 영화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준다. 전쟁과 환경 파괴가 가져온 재앙으로 인류는 몰락 직전에 내몰린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 충격적인 것은 인류가 더 이상 후세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정 때문이다. 열여덟 살로 가장 나이가 어렸던 아이가 죽자 전 세계는 큰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와중에 임신한 흑인 난민 소녀를 영국에서 도피시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내일의 희망임을 시사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2027년을 불과 3년밖에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보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18년 전에 인류의 전면적 불임 가능성을 경고할 정도로 인구 감소는 심각한 토론의 주제였다.
사실 이 영화가 나오고 2년이 지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구 감소가 현실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곧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된다. 대학들은 이미 신입생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인구 감소의 여파는 비단 대학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초·중·고교와 유치원도 심각한 운영난에 맞닥뜨리게 된다. 교육기관이 문을 닫으면 그 주변의 상가가 죽고 경제권이 붕괴한다. 결혼 적령기 가구의 숫자가 줄어들면 주택 수요가 감소해 집값도 하락한다.
우리나라의 2022년 한 해 국내총생산(GDP)은 2160조원에 달한다. 경제가 2% 성장하면 43조원의 부가가치가 신규로 창출된다. 이를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사회간접자본과 교육 그리고 복지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이런 분야에 대한 투자가 힘들어진다. 인프라는 녹슬고 성장 잠재력은 잠식된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 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8% 안팎이다. 소비가 2%만 감소해도 경제성장률이 약 1%는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소비는 인구 증감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아이 한 명이 새로 태어나면 그로 인해 추가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많이 늘어난다. 이는 가계 입장에서 보면 비용이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소비 증가를 의미한다. 역으로 아이 한 명이 덜 태어나면 가계는 그만큼 양육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경제 전체의 민간 소비는 감소한다.
따라서 출산율 감소와 인구의 고령화는 소비와 경제성장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한국은 해마다 출산율 감소의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1980년대 초 2명을 넘던 출산율은 최근에는 0.78명 수준까지 폭락했다. 1980년 초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를 정점으로 그 아래 세대가 인구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2년 5200만명을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70년에는 3800만명이 될 것이라 한다. 단순히 인구가 감소해도 소비 절벽을 거쳐 경제성장 악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여기에 고령화가 겹치면 경제성장은커녕 경기 후퇴를 걱정해야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도 2010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저축률이 높아지고 소비가 줄어들면서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잃어버린 수십 년을 보내야 했다.
미국의 경우도 2040년을 전후해 출생률이 사망률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미국의 인구는 2053년까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의 자연 감소를 이민 증가를 통해 상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경제는 놀라운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작년 4분기 미국 경제는 3.28% 성장했다. 어느 경제학자나 기관도 미 경제가 이 정도의 성장을 보이리라 전망하지 못했다. 유럽과 중국이 실질적인 경기 침체를 겪고 있음에도 미국만이 홀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신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주가가 급등하고 집값도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신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진 영향도 작용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 성장의 일등 공신은 강력한 민간 소비였다.
민간 소비는 미국 GDP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민간 소비가 탄탄히 버티면서 경제성장의 초석이 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소비가 흔들리게 되면 경기도 빠르게 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소비 감소는 기업의 매출과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기업은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대량 해고에 나서고 투자지출을 줄인다. 주가도 하락하고 주택 가격도 된서리를 맞게 된다. 그러면 민간 소비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 이런 경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있는 것이 탄탄한 소비이고 그 밑바탕에는 인구 유입이 있다.
인구 유입은 두 방향으로 경제의 활성화를 돕는다. 우선 모두가 꺼려 하는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해 경제성장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에서 딸기를 수확하고 양계장에서 닭을 도축하는 험한 일을 하면서 이들 산업이 제대로 유지되게 한다. 이들이 없다면 결국 딸기를 수입해야 하고 닭도 도축된 것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
또한, 양질의 두뇌가 유입되면 신기술 개발과 혁신에 기여하게 된다. 이로써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신성장 동력 발굴에 이바지하게 된다. 현재 미국의 21세기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빅테크 기업을 이끌고 있는 다수의 CEO와 기술 책임자가 해외에서 유입된 인력이다.
물론 이민정책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주제다. 그 나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일자리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이민자가 크게 반가울 리 없다. 문화적으로도 이질적이어서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이 침해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 준 맨해튼 계획의 주요 참여자들도 해외에서 유입된 학자들이었다. 미국 유수의 대학과 기관에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해 학문과 기술의 진흥을 이끄는 두뇌들도 외국 출신이 많다.
물론 인구가 급전직하로 감소하는 입장에서 국내 정책이 우선 시급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그 정책이 실효성이 없을 때는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해외에서의 인력 유입이 불가피하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인구 대책과 이민정책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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