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첫 버스 타기에 도전한다며 나간 손주들이
두려워 버스 길을 따라 걷다가 돌아왔단다
오래전 두 아이의 첫 지하철 타기 해프닝이···

얼마 전 초등학생인 손녀가 친구들과 버스를 탄 인증샷과 함께 문자가 왔다.
“여기 버스 안이야. 나 버스 탔어. 크크”
부모랑은 타봤어도 자기들끼리 타본 건 처음이라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나보다. 동생에게도 담에 데려간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방학 중인 오늘, 둘은 버스를 타고 구 시장(안동의 중심도시)에 가서 순대랑 떡볶이를 사 온다며 의기양양하게 손을 잡고 나갔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난 후, 드디어 딩동~하고 문이 열렸다. 세상에나, 머리에선 김이 솔솔~ 벌겋게 언 두 녀석의 얼굴이 떡볶이 꼴이다. 어른들이 장하다 대단하다 호들갑을 떠니 무안한 듯 씨익 웃으며 봉지를 던져놓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으며 고백하는 말~ 막상 버스를 타려니 가슴이 두근거려 포기하고 버스 가는 길을 따라 걸어서 다녀왔단다. 바람 불고 추운 날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말이다. 그래도 버스가 지나는 길을 확실히 알아서 다음엔 꼭 탈 거라며 큰소리 친다. 나름 가며 오며 본 것들도 큰 이야깃거리다.

대중교통하면 생각나는 옛날 옛적이 된 이야기다. 학부모가 된 우리는 아이들 공부만큼은 도시에서 시키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살다가 1988년도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이사했다. 셋방살이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은 눈만 뜨면 망아지마냥 뛰며 설치고, 우리는 눈만 뜨면 불안초조였다. 우리 집은 초역세권? 1분 거리에 뚝섬역이 있었다. 아이들의 소란은 전철이 나고 들며 내는 소음과 삐리리~ 신호와 안내음성에 섞여 그나마 조금 중화되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전철타고 서울역 가서 기차표를 예약하면 바다 보러 갈 수 있는데 엄마 아빠가 시간이 없네~’라고 넌지시 말했다. 위험하다며 얼씬도 못하게 한 전철타기를 허락한 거니 호기심 천국에 사는 아이들은 앗싸~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열 살이 된 누나가 심부름할 메모지와 동생 손을 꼭 잡고 문을 나섰다.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나도 휴대폰 없던 세상에선 기다림뿐, 후회와 걱정, 불안에 벌렁거리던 가슴이 터지기 직전 아이들은 기차표를 흔들며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우리는 그들이 다닌 전철 동선에 감격과 감탄을 번갈아 하며 자장면 파티도 했다. 그런데··· 새로 들려준 반전 이야기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방학은 학생에게만 있는 거지, 하필 평일, 출근 시간대, 어리바리 올라탄 전철에서 둘은 손을 꼭 잡고 몇 정거장을 버티다 그만 동생의 손을 놓쳤다. 그 와중에 문이 열리며 동시에 밀려 내려졌다 밀려 들어왔는데 동생이 다시 올라타지 못한 것이다.
문은 닫히고, 문을 사이에 두고 눈물 젖은 수신호가 이루어졌다. 안팎에서 울고불고했으니 고마운 어른들이 나서서 조처해 주었나 보다. 어찌어찌 다시 만났는데 이산가족 만남보다 더 감격스러운 상봉으로 부둥켜안고 난리가 났었다는···.
그날 고마운 어른들의 도움과 칭찬, 격려로 기차표도 사서 잘 귀가했다. 아이들에겐 서울이란 대도시에 입성하여 처음으로 경험한 대형?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일을 계획하면 음양으로 대처 방법을 미리 모색해 실수를 덜게 되더라는 이야기다. 또한 어떤 장거리 심부름을 시켜도 으쓱으쓱 거들먹거리며 잘 해냈다.
“그럴 땐 전화해야지 뭔 고생이야. 크면 저절로 타, 감기 걸리면 어쪄···.”
딸은 꽁꽁 언 얼굴로 귀가한 아이가 안쓰러워 잔소리를 해댔다. 사람의 마음은 참 미묘하다. 살아보니 이런저런 두렵고 힘들었던 경험이 세상살이에 큰 힘과 재산이 된다는 걸 알지만 내 자식은 그 어떤 고통과 힘듦도 경험하게 하기 싫다. 캥거루자식이 되든 말든 포시랍게 살게 하고 싶다. 너나없이 한결같은 부모마음 같다.

4학년이 된 둘째 녀석이 다시 발동을 건다.
“할머니, 할머니 집까지 버스 타고 가 볼까요?”
“그럴래?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게. 쉽단다.”
그런데 또 무엇이 두려운지 다음에 가야겠다며 슬그머니 포기한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놀랍고, 실수해도 행복한 체험은 10살 전후가 좋다. 이후엔 다 시시하다. 나는 아이 부모가 아니니 위험해도 새해 버스 타기 체험에 조력자가 되어 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