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공사장에서 교통 정리하는 알바해 본 뒤
몸 쓰는 노동의 가치 깨달은 지인의 남편
몸을 쓰다 보면 삶의 가치를 알게 된다

지인 부부와 검무산을 산행하러 집을 나서니 좁은 도로 곳곳이 매설 공사 중이다. 교통 담당 근로자가 봉을 흔들어 보이지 않는 건너편과 무전기로 차를 정지시키고 다시 보내기를 반복한다. 산행을 끝내고 오는 길에 지인이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따뜻한 음료를 봉지에 가득 담아 집 근처 매설 공사 현장 근로자에게 전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그와 동료라고 했다.
차 안에서 그들 부부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능력 있는 지인의 남편은 정년퇴직하고도 다니던 계약직 일을 몇 년 전에 그만두었다. 쉬는 것도 몇 년 지나자 지루해지고 성격도 소심하고 무력하게 변해갔다.
심적 고통을 회피할 수 있고 단순한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TV 시청. 하루 종일 리모컨을 사수하다 보니 누가 뭐라지 않아도 눈만 뜨면 눈치가 보였다. 주민 센터를 찾아 노인 일자리를 찾아보니 그것도 경쟁률이 이만저만 치열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토목공사 일을 맡아 하는 아들이 교통정리 하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며 물었다.
“공사장 앞에서 마네킹이 하는 (봉 흔드는) 일을 아비가 하라고?”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한 번 회장도 영원한 회장, 작은 기업이지만 이사님으로 불리던 나에게 그런 허접한 일을 권하다니. 시큰둥하게 듣다 보니 일 같지도 않은 일에 급여도 꽤 쏠쏠했다. 부인이 급여 부분에 놀라는 척 되묻는 폼세가 따지지 말고 운동 삼아 나가보라는 눈치다.
출근 첫날 어스름한 공사장은 엄청 추웠다. 그 일은 무선 신호에 따라 차를 정지시키고 통과하게 하는 거라 자칫 실수하면 사고가 난다. 춥기는 왜 그리 추운지, 다음날 바지를 두 개 껴입고 갔다가 그다음 날엔 내복에 솜바지를 입고 나갔어도 덜덜 떨렸다. 며칠 후 쉬는 날은 끙끙 앓았다. 책임자인 아들은 일터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슬쩍슬쩍 나를 살피는 것 같았다. 힘들어 못 하겠단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동분서주하는 아들을 보면 쏙 들어갔다.

그들 부부는 늘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고급 일을 하라 했다. 그는 노동을 하며 무엇이 진정한 고급 일인가 생각해 보았다. 공사장에서 만난 동료 모두 중년 이상의 나이라 마음은 편했지만 그는 체력이 달려 한 달을 겨우 채우고 손을 들었다. 그날 이후 아들이 집에 오면 대기업 회장 방문한 듯 극진히 대우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본 단편 소설집에 있는 이야기다.
고령사회에 노인도 넘치지만 히키코모리라는 은둔형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 그들만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획기적인 새 법이 만들어졌다. 한 곳에서 20분 이상 머물러 있으면 경고를 주고 그래도 안 움직이면 잡아가는 사회 규칙이다.
"이동하십시오. 이동하십시오."
도로와 주택, 아파트 실내외에 설치된 스피커에는 이동하라는 사이렌과 기계음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들은 잡혀가지 않으려 20분이 되면 좀비처럼 조금이라도 움직여 자세를 바꾼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자식에게 부자 엄마가 말한다.
"움직여. 몸을 쓰다 보면 삶의 가치를 알게 돼. 너의 미래와 너의 자아를 위해서야. 그러나 엄마 돈 많은 거 알지?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너의 자아를 위해 일을 찾아봐.“
요즘 젊은이들과 그들 세대 부모를 표현한 재밌는 콩트인데 마음에 와 닿았다.
산업공단 쪽에 볼일이 있어 가다보니 여기도 공사를 하느라 군데군데 작업 표시판이 서있다. 어김없이 막대 봉을 흔드는 근로자를 발견하는데 아이돌같이 잘생기고 키가 큰 앳된 청년이다.
누가 보든 말든 차가 뜸한 시간엔 취미인 듯 춤을 추다가 차가 다가오면 미끄러지듯 멈춰 서서 총 쏘듯 신호를 주는데 웃음이 나고 활기찼다. 앞선 차의 차 문으로 엄지척을 하는 손이 보인다. 에이~ 나도 엄지척 해 줄 걸. 잠시 길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백미러로 그 청년을 바라보며 한참 웃었다. 나도 지인처럼 따뜻한 음료를 사서 전해주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