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인간은 사회적 동물···마음에 안 들어도
적당한 거리에서 어울리려 애쓰다 보면
텃새로 뭉친 그들도 좋은 이웃이 된다

 요즘도 부잣집 담은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도 부잣집 담은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저 큰집에 여자가 혼자 산대.’

‘아니야. 젊은 남자랑 재혼했대.’

‘서울서 유명 대학 교수를 했대.’

‘에이, 남자가 유부남이라 몰래 왔다 갔다 하는 거래.’

오래전 내가 살던 아랫마을에 궁전같이 멋진 집을 지어 이사 온 여인이 있었다. 높은 담에 사나운 개들이 곳곳에 묶여있어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듣고도 으르렁거리며 짖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지날 때마다 개에게 하는 말인지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는 욕을 구시렁거렸다. 모이기만 하면 도마에 올려 수군댔다.

훗날 우연히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마을 사람들의 정보력에 감탄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의 가족관계를 거의 맞혔다. 덕후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녀가 말했다. “제 이야기는 여사님만 아는 비밀이에요.” 그날 나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당신만 모르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우리 마을에도 노년에 접어든 듯 보이는 남자가 홀로 귀촌해 왔다. 아무래도 졸혼을 했거나 이혼을 했거나 아니면 장가를 안 갔거나··· 하며 수군거렸다.

이전엔 이사를 오면 집집마다 인사를 다니며 떡을 돌렸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단독주택도 이사를 가든 오든 대문을 굳게 닫고 지내는 이가 많다.

새 사람이 들어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 이장이 방문하여 도장 받을 일도 있고 단체로 협동해서 해야 하는 마을일도 많아 서서히 스며들었지만, 지금은 모든 서류도 대면 없이 인터넷으로 제출 처리되고 협동일도 노인 일자리 창출에 밀려 외부 사람이 남의 동네 청소까지 다 해주니 이웃끼리 인사도 내가 먼저 안 하면 단절된다. 거기다가 아직 시골은 홀로 이사 온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웃이 키우던 사마귀가 앞발을 쳐들고 진입하던 트레일러를 막았다는 말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돌고 도는 뒷담화는 재밌기도 하고 호기심 천국이다. ‘홀로’라는 단어만으로도 수천 가지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세상 아닌가. 기분 좋은 말이면 듣는 사람도 기분 좋지만 거의 안 그렇다. 따지고 들수록 일파만파 커지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논쟁 속에 주인공이 끼면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결과는 침묵이라고. 다 알지만 침묵은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어렵다. 조용하게 살려고 이사 와서 다시 나가는 이유가 다 말로 받은 상처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야 사람 사는 세상이지. /게티이미지뱅크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야 사람 사는 세상이지. /게티이미지뱅크

이사 온 다음 날 그 남자는 동네 어르신들께 빵 봉지를 들고 다니며 이혼하고 혼자 사는 남자라고 떳떳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듯 하더니 지금은 차 없는 어른들 심부름도 해 드리고 틈틈이 홀로 사는 어른 마당의 풀도 같이 뽑아주니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다.

할머니들은 김치를 하거나 참기름을 짜면 그 집을 가장 먼저 챙긴다. 그는 외부 사람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는 산불 지킴이 일도 동네 사람들이 추천해 줘서 취업했다. 고령이 되어도 체력을 키우면 대도시보다 일자리가 참 많다. 나이 들면 건강이 재산이다.

아파트와는 달리 주택 생활은 보이는 세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인생으로 살아온 이웃과 말이 안 통하는 일도, 콩이 팥이 아닌 줄 알면서도 팥이라 빡빡 우기는 무대뽀 사람도 있다. 이해하자 들면 태평양 바다같이 이해가 되고 이해가 안 되면 바늘 꽂을 자리도 없이 불편해지는 인간관계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불편하다고 인연을 끊고 살기엔 너무 외롭고 고독하다. 요즘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것은 흉이 아니다. 능력이 있어야 혼자 산다.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당한 거리에서 어울리다 보면 텃새로 뭉친 그들도 좋은 이웃이 된다.

시에도 있지 않는가, ‘왜 사냐 건 그냥 웃지요'

빨간 깃대를 꼽은 산불 지킴이 차가 마을회관 앞에 잠시 멈춘다. 사탕 심부름을 시켜놓고 해 바라기를 하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다. 실버카와 함께 걷는 발걸음이 빨간 깃대를 향해 느릿느릿 힘차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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