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150만원까지 이자 경감
한동훈 "격차 해소, 당의 우선순위“

설 민생대책에 356만 취약가구의 전기료 인상 동결이 포함됐다. 고금리 장기화 여파에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40만명이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최대 150만원까지 줄여주고 사상 최대 수십조 자금 지원책도 마련했다.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도 5조나 된다. 이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입김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부양을 위해 하늘에서 돈을 쏟아붓듯이 공급한다고 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가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 정책 기조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미국의 9%대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사실 이때부터 시작됐다.
14일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골자로 한 '설 민생대책'을 확정했다. 지난해 유예했던 전기 요금 인상을 한 번 더 유예한다는 것이다. 여당 요청에 정부가 수용하기로 했다.
또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이자 경감을 제2금융권으로까지 확대한다. 3월 말부터 시행하며 대상자는 약 40만명, 경감 규모는 1인당 최대 150만원이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명절 유동성 지원을 위해 39조원의 자금을 새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동시에 정부는 하도급 대금이 제때 지급되는지, 임금 체불이 이뤄지지는 않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아울러 전통시장·골목상권을 지원하는 온누리상품권 월 구매 한도는 50만원 늘어난다. 종이형 상품권의 경우 현재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온누리상품권 총 발행 규모도 4조원에서 5조원으로 늘린다.
또 설 연휴 기간 사과, 배, 배추, 무, 고등어 등 차례상에 주로 올라가는 16대 성수품을 집중적으로 공급한다. 정부 할인 지원율은 20%에서 30%로 높인다. 정부 할인 지원에 참여하는 전통시장도 농축산물 700곳, 수산물 1000곳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과일 30만t에 대한 할당관세를 통해 공급을 확대하고, 품목 할인을 확대해 설 성수품 평균 가격을 작년 수준 이하로 관리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설 연휴 택배 업무에 임시 인력 6천여명을 확보해 지원하기로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계층 격차 해소 기조가 반영됐다. 대학생 학비 부담 경감 카드도 손에 쥐고 있다.

이날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학비 부담 경감 정책 대안을 검토·마련해서 이번 주 초라도 당과 협의해달라고 주문했다"며 "학교에 재정 부담을 주지 않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당이 정책 가장 우선순위로 격차 해소를 두고 있으니 정부 정책과 당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가 제안해 달라"라며 "산업은행 이전 관련 법, 실거주 의무 관련 주택법 등을 야당에 적극 설명하고 늦어도 2월에 처리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9%대 40년만 최악의 인플레 이끈 버냉키
긴축 장기화 의지 보인 한은과 엇박자 韓
집토끼 아랑곳 않고 '5.18 정신 헌법 수록'
정부 주도의 자금 대량 공급은 물가를 올린다. 정부 빚을 늘리고 재정적자를 악화시킨다. 기획재정부 1월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만 국가채무가 1110조원에 달했다. 정부 전망치(1101조7000억원)보다 웃돌았다. 지난달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 총부채 비율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273.1%로 전년 동기 대비 4.9%포인트 증가했다. 공공부문 부채는 지난해 처음 GDP 대비 73.5%로 70%를 돌파했다. 이 비율은 2011년 54.2%에서 2018년까지도 56.8%로 상승세를 이어오다가 2020년(66%) 60%대를 돌파했다.
한 비대위원장의 격차 해소에 대한 진심은 한동안 재정적자 상승세를 돌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리 인하는 당분간 없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긴축 장기화 노선과도 엇갈린다. 이는 3%대에서 수개월 멈춰있는 물가에 대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폭적인 지원금 정책과 상품권 발행을 한 문재인 정부 정책과 닮은 모습도 엿보인다.

이는 정책 평가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을 떠올리게도 한다. 21세기 초 닷컴버블 붕괴와 9.11 테러에 대한 침체로 경기부양책이 필요했던 미국은 그린스펀 시대부터 큰 폭으로 금리 인하했다. 6%대였던 금리는 3년 만에 1%가 됐다. 집값에 거품이 붙자 연준은 금리를 급하게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부동산 버블이 붕괴, 2007년 9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 (관련 기사 : [Fed의 역습]④ 버블 붕괴 템플릿 : 닷컴과 모기지의 배신)
이에 등장한 인물이 버냉키 의장이며 그는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금리를 낮췄고 부실한 기업의 채권을 모두 사주는 등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돈을 뿌렸다. 제때 돈을 거두지 않았던 버냉키 의장의 실책은 결국 또 다른 버블 붕괴 사이클을 만들었고 2022년 6월 미국 물가를 9.1%까지 일으켰다. 이를 잡기 위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4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아야만 했다. 2022년 3월(당시 0.5%)부터 시작한 미국의 긴축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현재 5.5%) 전 세계의 자금난과 침체를 일으켰다.

한편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여당 대표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해 보수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한 여당 지지자는 “정치가 유권자의 표를 얻어야 된다는 점에서는 백 보 양보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5.18 유공자가 누구인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동의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