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목적 '극우 테러' 점점 드러나는데
개인정보 이유로 인적 사항 공개 거부
해외, 정치 테러범 완전 공개가 일반적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경찰은 "습격범 김씨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총선에서 특정 세력에게 공천을 줘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경찰은 "습격범 김씨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총선에서 특정 세력에게 공천을 줘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이 이재명 대표를 살해할 목적으로 그의 목을 칼로 찌른 살인미수 혐의자 김모 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테러 발생 하루 만에 범인의 인적 사항을 비롯한 정치 성향을 즉각 공개한 박근혜 전 대통령 피습 사례와 대조되고 있다.

10일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장에 따르면, 부산경찰청은 이날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습격범 김씨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밝힌 김씨의 범행 동기를 보면 극우 테러 성격의 범죄 정황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일 오전 10시 50분께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 전망대를 방문한 이 대표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찌른 뒤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6차례에 걸쳐 이 대표를 따라다니거나 이 대표 방문지를 사전답사했고 흉기를 개조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부산경찰청은 김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한 뒤 피의자 추가 조사, 프로파일러 심리·진술 분석,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 각종 증거물 분석 등을 토대로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철문 청장은 김씨의 범행 동기가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이 대표가) 올해 총선에서 특정 세력에 공천을 줘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김씨의 범행 동기를 두고 수많은 억측이 나왔지만, 경찰이 공식적으로 범행 동기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이 대표가 사망할 경우 언론사에 전달하라고 지인에게 남긴 변명문이란 제목의 문서가 결정타였다. 8페이지짜리 문서엔 "사법부 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 재판이 지연되고 나아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나라가 좌파 세력에 넘어갈 것을 저지하려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김씨는 이날 경찰서 유치장을 나서며 "이재명 대표가 오늘 퇴원인데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취재진 질문이 이어지자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명문을 왜 썼느냐"는 질문에는 "보시고 참고하세요"라고 답했다. 경찰은 변명문과 관련된 조력자 70대 남성을 범행 방조 혐의로 검거해 입건한 바 있다.

민주당은 김씨의 과거 당적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찰은 정당법상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다. 경찰은 개인 정보를 누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고, 민주당은 공식적 발표는 누출로 볼 수 없다는 것. 이에 야권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와 달리 김씨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데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피습한 지충호 씨가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피습한 지충호 씨가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정치 테러범 이름 밝히는 게 일반적
美 NYT가 공개하며 명분도 사라져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6년 5월 20일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중 습격을 당한 20시간여 만에 경찰이 범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해 18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의 머릿속엔 지충호란 이름이 남아 있다. 당시 지충호 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8건의 전과로 15년 가까이 복역하고 출소했으며 오랜 수감 생활이 억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동기를 밝혔다. 당시 서대문경찰청은 브리핑에서 전과 전력, 직전 행적, 3일 전 통화 내역까지 공개했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정치 테러범의 인적 사항과 정치 성향 공개는 일반적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이 대표 습격범의 실명과 직업(공인중개사)까지 밝히면서 "한국 경찰이 극우 테러란 사실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 "암살 테러범을 공익신고자 취급하는 것이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경찰의 경우 지난해 7월 8일 아베 총리 총격 살해범 야마가미 데쓰야의 실명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때부터 통일교와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것에 대한 앙갚음이 주요 범행 동기 중의 하나였다.

한국 정부 역시 2015년 3월 5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피습한 김기종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대표 김기종 씨의 신원을 즉각 공개하며 좌익 테러로 규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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