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 큰 폭 둔화 유가 70달러 영향
‘금리 인상 사이클 끝났다’ 공감 지배적
원유 공급 느는데 축 처진 글로벌 경기
감산 이슈 불구 내년 상반기 70~80달러

미국 소비자 및 생산자 물가가 큰 폭으로 하락 전환하는 동시에 경기 둔화 지표가 확인되면서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이끌고 지지했던 원유 가격이 70달러대로 내려앉은 영향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배럴당 100달러 전망까지 나오며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볼드모트로 불리던 유가는 반지 잃은 골룸처럼 주저앉아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70~80달러대 박스권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22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 가격은 77.86달러(한국 시각 오후 4시 40분 기준)를 기록했다. 지날 7일 77.37달러로 장을 마감한 이후 12거래일 동안 70달러대에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에 9월 중순 90달러를 훌쩍 넘었던 유가 상황과 판이하다. 완연한 하락세를 그리던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상승 전환(6월 3.0%)하며 8월과 9월 3.7%까지 올랐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카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관련 기사 : [포커스] ‘한 번 더 인상’ 무게 실은 파월···킹달러에 치인 코스피·코스닥 개미)
최근 유가 하락은 원유 공급 증가와 수요 둔화 때문이다. 하마스 사태로 중동 지역에 긴장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가 생산되지 않는 지역이기에 확전 공포심 말곤 직접적인 공급난을 불러오진 않았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달 원유 재고는 360만 배럴 증가한 4억2190만 배럴을 기록했다. 예상 공급치(180만 배럴)의 두 배로 원유 가격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감산하는 반면 OPEC에 속하지 않는 국가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했다. 동시에 글로벌 수요 둔화가 지난주 WTI 가격을 순식간에 72달러까지 밀리게 했다. (11월 16일 종가 72.90달러)
이와 관련해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미국 원유 생산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브라질과 캐나다의 원유 공급량도 증가했다”라면서 “반면 중국, 미국 등의 경기 둔화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로 가격이 이전보단 약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유가 뒷걸음질에 물가도 뒤따라 내려왔다. 미국의 10월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0.5% 떨어져 5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는 전달보다 큰 폭으로 둔화했다. (2.2%→1.3%) 휘발유 등 에너지 가격 하락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주효하다. 근원 생산자물가의 연간(2.7→2.4%) 및 월간 상승률(0.2→0.0%)도 모두 전월 대비 둔화했다.

유가 등락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몰고 오기도 몰아내기도 한다.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원유 공급 불안으로 유가 급등→물가 상승→금리 인상 순서를 따랐다. 전쟁 직후 유가는 배럴당 123.7달러까지 상승했고 미국 물가는 작년 6월 9.1%까지 치솟았다. 100달러대에서 내려오지 않던 유가는 연준의 4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이라는 극약처방 이후 사그라졌다.
미국인의 소비가 감소하고 고금리와 물가 상승에 신용 여건도 악화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 사이클 중단 선언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 완화 신호들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전반적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다니엘 이바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채권시장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높다”면서 “인플레이션 문제 해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분간 과거부터 물가를 일으켜 왔던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은 작다. 경기 둔화가 전망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라 원유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 전문위원은 “미국을 비롯한 비OPEC 국가의 원유 생산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급은 증가할 것이다. 유가 약세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선 수요 회복 시그널이 있어야 한다”면서 “경기 둔화 우려에도 유가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그건 사우디 등 산유국의 감산 때문이다. 내년 2분기까지도 70~80달러를 왔다 갔다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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