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 무분별한 탈시설 위험해" 
유럽연합, '최중증 장애인' 고려해야

'탈시설'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유럽연합 보고서 /유럽연합
'탈시설'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유럽연합 보고서 /유럽연합

유럽연합이 일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장애인 시설 폐쇄 계획을 뜻하는 일명 '탈시설' 정책을 두고 "장애인의 희생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별 혹은 지역별 상황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탈시설 정책을 우려한 것이다. 

3일 여성경제신문이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전달받은 유럽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무분별한 탈시설 정책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 피해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전문가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 돌봄 공백을 우려했다. 

유럽연합이 전문가 자문을 의뢰해 지난 2009년 발표한 '유럽연합 시설에서 지역사회 거주 전환 정책에 대한 임시 전문가 그룹 보고서'는 유럽노인플랫폼(AGE), 유럽가족조직연합(COFACE), 공동체생활을위한유럽연합(ECCL), 유럽장애포럼(EDF) 소속 전문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보고서는"'시설 이용자를 5년간 50%로 줄인다'와 같은 임의적인 목표를 일부 국가에서 수립하고 있다"며 "이같은 비현실적인 탈시설 마감 기한을 둔 국가는 대부분 그 기한 내에 적절한 대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정부나 지자체의 능력을 꼼꼼히 따져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시설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한을 설정해 너무 빨리 시설을 폐쇄하거나 시설 폐쇄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선 21대 국회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년 이내에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내용을 담아 2020년 12월 '탈시설 지원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시설 업계에선 '시설 이용이 불가피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안전을 무시한 일방적인 법안 발의'라며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의 탈시설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면서 "일부 국가에선 탈시설에 대한 비용 절감을 정부가 강조하기도 하는데, 지역사회에서의 탈시설 관련 서비스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는다면 지역사회 케어는 오히려 후퇴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탈시설을 진행할 땐 가족 간병인을 지원하는 제도 시행도 필수적"이라며 "또한 탈시설 시 일부 국가는 편한 길을 선택하기 위해 '가장 이동이 용이한' 시설 입소 장애인을 이동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경증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먼저 이동시켜 시설에 있는 전체 이용자 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고, 이 전략은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 등 가장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관계자들이 탈시설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지난 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관계자들이 탈시설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국내에서도 경증 장애인 위주의 우선적인 탈시설 계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관계자는 "폐쇄된 장애인시설에서 자립센터로 간 장애인들은 전체 74명 중 6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의사 표현이 가능하고 사회성 있는 경증 장애인들뿐이었다. 나머지 49명의 중증장애인은 다른 거주시설에서 받아주질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인지능력이 3, 4세 수준의 중증장애인들은 자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거주시설은 폐쇄하는 게 아니고 더 늘려야 한다. 장애인복지정책은 획일적인 탈시설 정책이 아닌 장애인의 중증 정도와 사정을 고려한 거주시설 장려 정책을 펼쳐주기를 간절하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 보고서는 "시설 수가 줄어들면 시설의 통합을 결정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면서 "그 결과 장애인이 원래 생활하던 시설에서 익숙하지 않은 시설로 옮겨지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중증 장애를 가진 저연령대 장애인은 갑작스러운 이동의 결과로 쇼크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설의 합병이나 통합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탈시설에 따른 무분별한 공간 변화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게 될 수 있고 이에 따른 또 다른 장애인 학대나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크다. 탈시설은 장기간 계획을 두고 지역사회의 사정을 면밀히 고려해 진행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7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 정착에 투입되는 예산이 시설 거주 장애인에 비해 더 많은 만큼 탈시설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단 계획이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서울시는 거주 장애인이 모두 퇴소한 A 시설에 대한 예비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시는 "조사 결과, 탈시설 장애인 38명 중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이 29명(76%)이며, 이 중 의사소통이 심하게 곤란한 장애인 20명은 어떻게 의사표시를 하고 자립생활을 하게 됐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자립보다는 요양과 돌봄을 받아야 할 사례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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