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변해버린 선투자
청산엔 투자금 3배 필요
작가에 책임 전가한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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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 불공정 계약으로 15년 간 고작 1200만원을 받았다. 이우영 작가는 저작권 분쟁과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불공정 계약은 만화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1조원 규모의 웹툰 시장. 웹툰 작가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 쉬는 날 없이 일해도 오히려 빚이 쌓이는 구조다. 회사는 작가에게 돈이 되는 장르를 연재할 것을 강요한다. 병에 걸리더라도 마음대로 휴재조차 할 수 없다. 한편에선 연예기획사의 '노예계약'을 재현한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은 노동 사각지대인 웹툰 작가의 계약 구조 민낯을 파헤쳐 본다. [편집자주] ① 문제 많은 수익분배···작가들의 하소연 |

"불법 무료 사이트로 인한 손해보다 카카오페이지가 가져가는 게 더 많아요. 물론 불법 사이트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답니다. 처음 제 작품을 출시했을 땐 아직 불법 사이트엔 웹툰이 올라가지 않았던 시기잖아요. 당시 매출과 지금 매출을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나요. 근데 카카오페이지와 에이전시가 수익의 80%를 떼거든요. 제 유료 수익과 통장에 찍힌 금액이랑 10배 정도 차이가 나요. 그래서 불법 사이트로 인한 타격이 크게 실감되지 않더라고요.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죠."
- 익명을 요구한 웹툰 작가 A씨
누누티비. 드라마·영화·예능 등 각종 영상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하는 불법 사이트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자 불법 유통도 늘어났다. 이에 정부까지 나서서 불법 유통 근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웹툰업계에도 불법 무료 사이트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밤토끼'가 있다. 수익구조가 유료 서비스로 개편되면서 불법 사이트는 웹툰작가의 적이 됐다. 하지만 웹툰 작가 입장에선 카카오페이지와 중간에 낀 에이전시가 수익의 80%를 챙겨 가기 때문에 더 많은 타격을 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 결과 웹소설·드라마 연계로 성장한 웹툰 산업 속에서 웹툰작가는 만화를 창작한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연 1조원 시장을 이끈 장본인이지만 정작 호황을 누리긴커녕 오히려 처우가 악화된 실정이다.
현재 한국 웹툰은 저수요·과공급이 현실화된 '레드오션(Red Ocean)'이다. 특히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플랫폼 거래액이 줄었다.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분기 스토리 거래액 196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대비 16% 하락했으며 꾸준히 10~30%대 성장률을 기록했던 카카오엔터가 역성장한 건 2015년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카카오엔터는 신진 작가 육성에 힘써 왔다. 지난해엔 '카카오페이지 스테이지' 공모전을 통해 카카오페이지에만 75명의 신진 작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웹툰시장이 급성장하는데 맞춰 작가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 조사 기관인 스페리컬 인사이트 앤드 컨설팅은 한국의 웹툰 시장이 2030년에는 601억달러(한화로 약 8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여성경제신문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신인부터 시작한 웹툰 작가 A씨를 만났다. 현재 그의 작품은 약 2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A씨는 카카오페이지가 사실상 무료노동을 강제하는 계약구조를 가졌다고 토로했다. 연재 준비 기간에 들어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웹툰 산업은 커지고 공급은 많아졌는데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외부 활동 증가로 수요는 줄어들었다"며 "플랫폼은 작가에게서 경비를 줄이고 있다. 작품이 많아질수록 작가는 점점 가난해지는 기형적인 형태"라고 호소했다.
대다수의 플랫폼은 신인 작가에게 연재가 결정되면 '세이브 원고'를 그릴 것을 요구한다. 세이브 원고란 연재 시 작가가 개인적 사정 등으로 작품을 올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비축분을 의미한다.
카카오페이지는 새로 나온 작품의 경우 출시일에 웹툰 20화를 한 번에 공개한다. 작품 주기가 1주일에 한 편인 걸 고려할 때 20주가 소요되는 분량이다. 여기에 비축분까지 더해지면 상당 기간 세이브 원고를 준비해야 한다. A씨의 경우 여러 수정을 거쳐 20화의 원고를 작업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생계 보장·유료화 구조 이뤄낸 MG
'후차감'에 MG 정산 사실상 불가능

플랫폼에서는 작가의 생계를 위해 '선투자(MG·Minimum Guarantee)'라 부르는 최소수익을 미리 지급한다. 작품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작가의 생계를 지원한다. 다만 정식 작가가 된 후엔 MG를 갚아야 한다. 작품의 인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플랫폼에서 지급해주던 '원고료'와 다르다.
플랫폼이 MG를 작가에게 지급할 수 있게 된 건 유료화 플랫폼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성인을 위한 부분 유료화 웹툰 플랫폼인 레진코믹스가 효시다. 웹툰업계 관계자는 MG 계약 구조 덕분에 오늘날 모습으로 업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 회당 200원씩 지불하는 유료 웹툰 서비스가 정착돼 새로운 수익 창출 구조가 탄생하면서 플랫폼도 작가에게 MG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MG를 어떻게 갚아 나가느냐에 따라 작가와 플랫폼의 이익이 엇갈린다. 통상 영화산업 등에선 선차감(플랫폼 입장에선 분배)으로 이뤄진다. 작품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먼저 MG부터 청산하고 이후 남는 부분을 작가와 플랫폼이 나눈다. 빚부터 갚고 수익을 나누기 때문에 작가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이와 달리 웹툰업계에선 '후차감(분배)'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MG부터 차감하는 선차감과 달리 후차감 구조는 빚을 갚기 전에 먼저 수익 배분을 하고 작가 몫에서 MG를 차감해간다. 이익에서 회사 몫을 먼저 뗀 후에 작가 몫으로 MG를 청산하기 때문에 MG 청산이 길어진다. 수익이 적으면 작가는 한 푼도 정산 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정책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의 플랫폼은 작가와 7대3의 비율로 웹툰 수익을 나눈다. 월 200만원 상당의 MG를 갚기 위해선 약 667만원 이상 판매 수익을 내야 한다. 그 이하의 수익은 모두 플랫폼의 몫이다. MG에 발이 묶이는 '노예'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세이브 원고 작업한 노동의 대가는 사라진다. 이른바 무료노동의 실체다.
정부 표준도 작가 보호에 효능無
엔터업계 불공정 관행 전염된 듯

MG를 갚을 지 여부는 작가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MG를 쌓아 놓으면 수익 배분을 포기해야 하는 실상이다. 또한 MG보다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회사 매출에 도움되지 못한다며 쓸모없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나마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과 직계약한 작가는 형편이 낫지만 에이전시라 불리는 콘텐트 제작사(CP)와 계약한 작가의 사정은 훨씬 열악하다. IP 수익·광고수익을 보장하지 않으며 연재를 위해 필요한 어시스트(웹툰의 채색·후보정·효과 등의 작업을 진행) 고용비나 4대 보험 가입과 같은 복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국이다. 웹툰 작가와 같은 예술인과 체결했으면서 월평균소득이 50만원 이상인 경우 사업주는 각종 신고 및 납부 의무가 있는데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웹툰작가 B씨는 "비밀유지의무 조항 때문에 자세히는 말할 순 없지만 계약 원금 모두를 작가 측에서 갚아야 하는 등 작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불리한 조항이 많다"며 "이런 계약이 업계 표준이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계약 문제를 인식해 2021년 웹툰업계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웹툰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비롯해 연재료·제작료 수익배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MG나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의무 등 불공정 계약 방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업계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현직 웹툰 작가면서 서원대학교 웹툰콘텐츠학과에 재직 중인 백은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웹툰 산업의 성장에 따라 유통 체계가 복잡해져 다양한 고용 형태와 계약이 생겨났다"며 "만화계에선 불공정 계약 사례를 조사하려 했지만 계약서에 비밀 보장 의무에 따라 작가들이 MG나 유료 수익에 대해 발설할 수 없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백 교수는 "웹툰 작가들이 어려운 계약 용어나 유통 체계를 정확히 몰라 불공정 계약을 맺는 경우도 많아 저작권 및 계약서 작성 교육이 활성화되야 한다"며 "만화계에서는 계약서 관련 교육을 확대하려고 준비 중이다"고 전했다.
빅테크 플랫폼은 작가와 플랫폼의 중간에서 기획·연재·유통 등을 담당하는 만화 에이전시의 문제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산명세를 확인할 수 있는 파트너 포털을 운영하는 이상 수익 배분을 잘못할 수 없다. 정산 비율에 맞춰 배분이 이뤄지고 있다"며 "선투자의 경우 작품이 안되면 그 비용을 플랫폼에서 감내하는 위험부담을 안고서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선투자는 오랫동안 정산 받지 못한 아이돌이 있는 엔터계가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카카오는 작가들의 어려움을 공감해 창작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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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웹툰작가의 늪] ① 문제 많은 수익분배···작가들의 하소연' 관련 4월 1일 자 위 제목의 보도에 있어 당초 카카오페이지가 수익의 80%를 떼어간다고 보도했으나 이를 "카카오페이지와 CP사가 수익의 80%를 떼어간다"는 내용으로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어 카카오페이지 측은 "2021년 기준 실질 정산율 데이터 등에 따르면 최소 69%의 수익을 CP사 및 작가에게 배분하고 있으며 본사는 예술인고용보험 가입 등 법정 의무가 발생한 신고 및 가입 의무를 모두 이행하고 있다. 본사는 폭넓은 휴재 제도를 운영하여 휴재를 보장하고 있으며 현재 카카오페이지가 체결하는 표준계약서에 휴재권 등 웹툰 작가의 복지 및 건강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반영되어 체결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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