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낮은 해외 판권 수익배분
카카오 "에이전시 계약 알 수 없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8 서울진로직업박람회 진로직업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웹툰 그리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8 서울진로직업박람회 진로직업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웹툰 그리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 불공정 계약으로 15년간 고작 1200만원을 받았다. 이우영 작가는 저작권 분쟁과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불공정 계약은 만화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1조원 규모의 웹툰 시장. 웹툰 작가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 쉬는 날 없이 일해도 오히려 빚이 쌓이는 구조다. 회사는 작가에게 돈이 되는 장르를 연재할 것을 강요한다. 병에 걸리더라도 마음대로 휴재조차 할 수 없다. 한편에선 연예기획사의 '노예계약'을 재현한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은 노동 사각지대인 웹툰 작가의 계약 구조 민낯을 파헤쳐 본다. [편집자주]

① 문제 많은 수익배분···작가들의 하소연
② 플랫폼과 에이전시 책임 핑퐁에 작가만 희생
③ '가스라이팅'에 치인 작가‧‧‧쉴 권리조차 없었다

 

# 웹툰 업계 구조를 알면 카카오가 어디서 이득을 챙기는지 보여요. 웹툰 시장에 큰 플랫폼이 있고 그 아래에 플랫폼과 작가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가 있죠. 경비 처리를 위해 에이전시를 끼우고 문제가 발생하면 에이전시에 책임을 떠넘기죠. 에이전시는 작가에게 책임을 넘기니 플랫폼이 받을 불이익은 별로 없어요. 정산 비율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보다 4배 이상 벌었을 걸로 생각해요.

- 익명을 요구한 웹툰 작가 A씨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가 지난해 1조원 매출을 돌파했다. 12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전분기 대비 47% 증가한 1조2925억원이었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카카오엔터의 올해 매출을 3조5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SM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한 카카오엔터의 올해 기업가치는 1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봤다. 

카카오 매출의 35%는 웹툰에서 나왔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그렇다면 카카오에 웹툰을 공급하고 있는 작가의 수입도 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소수 인기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 작가 수입은 제자리걸음이다. 플랫폼의 매출은 급증했지만 작가에 대한 배분 비율은 그에 비례해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무료 웹툰이 대세였던 당시엔 웹툰 작가와 플랫폼의 직계약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유료 플랫폼이 확산하면서 중간에 '에이전시' 혹은 '콘텐트 제작사(CP, Content Provider)'가 끼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CP와 계약하고 CP가 작가와 계약하는 이중구조가 확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과 직계약한 웹툰 작가는 조사대상자 846명 중 45.3%로 나타났다. 이어서 에이전시 계약이 43%에 달했다. CP가 작가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각종 불공정 조항을 강요해도 플랫폼은 '나 몰라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카카오엔터 스스로도 종속기업과 관계기업을 계속 늘리고 있다. 2021년 카카오엔터의 웹툰 관련 자회사가 8개에 불과했다면 지난해엔 약 14개로 늘어났다. 웹툰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웹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도 포함한다면 웹툰 관련된 카카오엔터의 자회사는 더 많아진다. 그만큼 카카오엔터와 작가 간의 직거래는 줄 수밖에 없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작가와 직접 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 유형도 다양해 모두를 파악할 순 없다"며 "2021년도 누적 정산율은 69%였다"고 말했다. 다만 69% 가운데 작가에게 얼마나 배분됐는지 카카오는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미국의 타파스와 래디쉬를 인수해 지난해 총 166억원의 매출을 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미국의 타파스와 래디쉬를 인수해 지난해 총 166억원의 매출을 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작가에 대한 불공정 배분은 해외시장 진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카카오픽코마는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980억원 매출을 냈다. 카카오엔터가 지난해 북미 플랫폼인 타마스와 래디쉬 인수합병으로 달성한 매출은 총 166억원이다.

그러나 웹툰 작가의 해외 수입은 저조하다. 웹툰 작가의 주 수입원을 살펴보면 국내 시장의 수익에만 한정된 수익배분(RS)과 최소보장금(MG)은 각각 64.8%와 53.3%로 나왔다. 반면 해외 유통 수익은 24.2%로 국내 수익의 절반에 불과했다.

익명을 요청한 웹툰 작가 A씨는 본지에 "작품을 해외에 출시하면 정산되는 건 매출의 4%뿐"이라고 호소했다. A씨는 "해외 매출의 22%가 직계약한 에이전시에 배분되며 나는 그 배분액의 20%를 받는다"며 "그 돈으로 어시스트 등 직원에게 월급을 주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지난 2021년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웹툰작가노동조합은 "사실상 한 회사인데 여러 단계를 거치게 만들어 징수하지 않아도 될 수수료를 이중으로 징수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서비스할 경우 해외법인이 수수료를 또 한 번 징수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수 카카오엔터 대표는 2021년 국정감사에서 "에이전시와 작가 사이의 불공정 계약에 대해 알고 있다"며 "실제로 불공정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지 자회사 대상으로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카카오엔터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웹툰 작가와의 계약은 카카오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형국이다.

법 적용 피한 방책인 '에이전시'
출판사를 중개업으로 둔갑시켜
협회 "카카오, 불공정 개선해야"

서점의 만화책 판매대에서 웹툰 종이책을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웹툰
서점의 만화책 판매대에서 웹툰 종이책을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웹툰

플랫폼과 작가 사이 이중구조의 중간에 낀 출판사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웹툰 콘텐츠를 출판할 뿐인데 '중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란 단어를 써 플랫폼이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본래 만화 출판사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적용받는다. 법에 따르면 출판사는 저작물을 부당하게 구입하는 등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 규제를 받는다. 작가에 대한 불공정 계약도 강요하기 어렵다. 

그런데 웹툰은 종이책으로 내는 게 아니어서 출판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카카오는 이 점을 활용해 출판사를 '에이전시'로 대한다. 카카오페이지에 작품을 납품하는 업체 대표는 "우리는 작품을 편집해 플랫폼에 납품하는 일반 출판사지만 카카오엔터가 우리를 출판사가 아닌 중개사로 보고 있다"며 "에이전시로 일컫는 건 우리를 저작권 알선 중개사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카오를 대신해 출판사가 작가에 대한 계약과 매니지먼트까지 떠안도록 하기 위한 꼼수란 얘기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법 외에도 업계 관행이나 정해진 규칙도 지켜야 하니 출판사 대신 에이전시라고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카카오엔터에 개선해야 한다고 2년 전부터 요구해왔지만 아직도 개선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부의장 최승재 의원은 "국내 웹툰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우수한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이 구축한 불공정 계약구조에 작가들의 창의성과 노력이 발목 잡혀 있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최 의원은 "구조적으로 플랫폼은 작가들을 종속화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콘텐츠를 공장형으로 양산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이 고착화되면 작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플랫폼에 맞서 웹툰 작가들이 스스로 권익을 증진할 방안을 모색하고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이익을 불합리하게 수탈해 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웹툰 업계의 이 같은 구조는 카카오엔터가 영위 중인 연예인 기획사 사업의 형태와 유사하다. 음반 매니지먼트 회사인 레이블을 산하에 둬 음반 관련 법 적용을 받지 않는 구조다.

카카오엔터는 현재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인 이담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스타쉽엔터테인먼트·안테나 등의 레이블을 종속기업으로 두고 있다. 최근 SM엔터까지 인수하면서 산하 레이블 회사를 더욱 확장해 가고 있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음반 제작을 겸하지 않는 연예기획사는 사업자 등록 외 허가나 신고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음반 제작을 겸하는 연예기획사만 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에 연예기획사가 택한 방법은 음반 제작 회사를 따로 둬 연예매니지먼트와 음반 제작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음반제작하지 않는 연예기획사를 제재할 규제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에이전트 업무를 비롯해 프로그램 제작 및 연예인 양성사업까지 가능하다. 연예매니지먼트사와 연예인 간 체결하는 매니지먼트 계약을 규제하는 법령도 없는 상황이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웹툰은 책으로 나오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출판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에이전시나 CP를 두는 이유는 전문화와 세분화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지 법망을 피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웹툰 작가에 대한 불공정 계약을 전수조사를 했지만 적발된 사례는 없었다"며 "표준계약서를 쓰도록 권고는 하지만 우리가 모든 불공정 계약 사례를 다 책임질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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