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키워드에 '헬조선·노예' 댓글 많아
청년 세대, 미래 걱정보다 현실 분노 표출
결혼과 출산 열망은 높지만 '불가능' 직면
단기적 정책보다 청년층 분노부터 달래야

대한가족계획협회 관계자들이 ‘무작정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자전거 앞에 걸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가족계획협회 관계자들이 ‘무작정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자전거 앞에 걸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도 많다며 하나 낳아 잘 키우자고 했던 80~90년대. 그 시절 낳은 아이들이 부모 세대가 되자 이들은 '헬조선의 노예'를 낳을 바엔 무자녀로 살겠다고 한다. 40여 년 만에 뒤바뀌어 버린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저출산' 현상을 알아봤다.

20일 빅데이터 분석 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최근 저출산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 459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청년 세대는 저출산에 대한 걱정보다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헬조선에서 아이를 낳아봤자 금수저 가문의 노예를 공급해주는 것뿐", "오히려 저출산은 축복, 싼값에 노예 사야 하는 기업과 정부에게는 재앙이겠지만...", "헬조선은 나만 겪으면 된다. 굳이 2세까지 헬조선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원정 출산 욕하지만 차라리 미국 가서 시민권 받는 게 가문을 위한 일".

위 사례처럼 출산과 육아 등의 키워드가 달린 기사 댓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헬조선·노예·세금·증세·금수저·흙수저 등인 것으로 빅데이터 분석 결과 나타났다. 특히 헬조선은 흙수저와 금수저, 노예의 키워드와 함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르스프락시아에 따르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 뒤에 흙수저 혹은 금수저가 뒤따라오는 식이었다. 특히 비슷한 문장으로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헬조선에서 애를 키우기는 힘들다'는 내용의 댓글이 많았다. 

청년 실업·정부 정책 불만

경제적 불평등 → 저출산

헬조선은 2010년대에 들어 유명해진 인터넷 신조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국은 지옥에 가까울 정도로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청년의 비판적 시각에서 파생된 신조어가 헬조선"이라며 "청년 실업 문제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경제적 불평등이나 과다한 노동시간 문제, 빈익빈 부익부 등 한국의 단점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단어"라고 말했다. 

특히 저출산과 관련 헬조선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된 이유로 전문가는 '주거 문제'를 꼽았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연구원 관계자는 본지에 "청년이 마주하는 고용시장 불안과 더불어 출산 이후 부담하게 되는 자녀 양육비까지, 여기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주택 마련에 대한 경제적 불안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연기하게 되는 주된 원인으로 본다"고 제언했다.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본 성수동 고급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본 성수동 고급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실제 지난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서 '배우자나 애인과 동거는 하면서도 왜 혼인신고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2.2%가 '주택 마련과 경제적 문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선 '신혼부부가 가족계획을 세울 때 우선 고려하는 부분'이란 설문조사에 40.6%가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선택했다. 

청년노동연구소 관계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헬조선'을 상징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일반 청년 가구 중 75%는 결혼 시 주거 부담 여부에 대해 '부담이 된다'고 답했고 24%만이 부담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생아 수는 1만8982명으로 월간 통계 집계 시작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35만7771명) 처음 40만명 선이 꺾인 후 꾸준히 감소했다. 2018년 32만6822명, 2019년 30만2676명을 지나 2020년에는 27만2337명, 2021년 26만562명으로 20만명대에 이르렀다.

헬조선 단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열망

사실 댓글은 한 주제에 대해 비판하면서 내적 열등감을 표출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다. 영국의 행동 심리학자 조 헤밍스(Jo Hemmings)는 비판적인 댓글을 쓰는 심리적 이유에 대해 "균형을 잃은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인터넷에서 푸는 경향을 보인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댓글은 익명으로 달 수 있다. 익명성은 내적인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반면 이를 통해 표출하는 분노는 사실 본인이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룰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다.

앞서 살펴본 '저출산' 키워드에 '헬조선'과 '노예' 등 부정적 단어가 언급된 것도 사실상 결혼과 출산의 열망은 높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영수 경제평론가는 본지와 통화에서 "청년세대는 결혼을 못 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게 아니다"면서 "결혼에 대한 의지와 의향은 본능과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70~80년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측면에서 부모 세대를 역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이 벽을 넘는 것 자체를 포기하면서 이것이 분노로 이어지고 온라인 댓글을 통해 표출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전문가는 당장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보다는 청년 세대의 분노를 먼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과거 스웨덴이 인구 감소 국면에서 단순한 출산 장려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면서 삶의 질을 개선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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