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경제학자들은 올해 물가 바닥 찍고 경기 안정 예상
기업 현장선 고임금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박 우려
은행 부실 조짐도 연준 긴축 고수 어렵게 할 변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다보스 AP=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다보스 AP=연합뉴스

2010년 방영된 사극 ‘동이’는 조선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다룬다. 한효주가 연기한 숙빈 최씨는 노비 신분에서 최고 품계인 빈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그려진다. 숙빈이 그렇게 미화된 것은 그의 아들 영조가 왕위에 올라 후손에 대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론의 지지를 등에 업은 숙빈은 당시 노론과 정권을 다투던 남인 출신 장희빈의 라이벌이었다. 물론 그전에 장희빈은 노론 출신의 인현왕후와도 경쟁 관계였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내쫓고 중전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숙종의 변심으로 사사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결국 숙빈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듯했지만, 그는 중전의 자리에까지 오르지 못하고 훗날 영조가 되는 아들 이금과 함께 궁에서 내쳐진다. 궁 밖의 생활이 편안하지만은 않았겠지만, 이곳에서의 삶이 후에 영조가 왕이 된 후 생활 밀착형 선정을 베푸는 데 큰 뒷받침이 된다.

고관대작들이 사서삼경이나 읽고 시문을 즐기며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빠져 있을 때 영조는 끝까지 일반 백성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박문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암행어사로 파견해 지방 관아의 부패를 감찰하고 바로잡도록 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가혹한 정치 탄압 등 과오도 많았지만 영조가 보여준 선정은 조선 초기 세종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국가 최고지도자가 현실에 바탕을 두고 현장밀착형 정치를 펼칠 때 국가 경제는 부흥하고 서민의 삶은 펴졌다. 실제 조선시대 세종과 영조 대는 경제성장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다. 반면 암군이 등장해 주변의 간신에 둘러싸여 귀를 막은 채 공리공론적 정책에 빠져있을 때 국가의 힘은 쇠진해졌다.

그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세계를 이끄는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경제계 및 학계 인사들이 모여 경제 전망에 대해 토론했다. 무엇보다 금년 다보스 포럼을 특징지은 것은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주의였다. 포럼은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찼다.

이들의 예상을 보면 금년 세계 경제는 소프트랜딩에 성공하고 물가도 하락해 머지않아 골디락스 상태에 진입할 것처럼 보인다. 한편,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정례 서베이에 따르면 응답한 경제학자의 61%가 금년에 경기가 침체(recession)에 빠져들 것이라 예측했다.

이들은 최근 전년 대비 6.5%까지 낮아진 소비자물가(CPI) 인플레이션은 연말에는 3.1%로 하락하고 내년에는 2.4%까지 안정될 것으로 봤다. 경기침체도 그렇게 깊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들도 어느 정도 소프트랜딩의 시나리오에 가까운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실물경제에서 직접 뛰고 있는 기업들의 전망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JP모건 은행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을 넘는 숫자의 중소규모 기업들이 신규 인원을 고용해 직원 수를 늘리고 67%가 넘는 중견기업들이 향후 임금을 인상할 것이라 응답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임금 등의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전가할 것이라고 답하면서 물가가 당분간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물가는 경제학자의 전망대로 빠른 안정세를 보일까 아니면 기업인의 전망대로 고공상태를 유지할까?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연합뉴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영향으로 경기가 나빠져 물가 상승을 초래한 수요 측 요인이 단기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크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높은 물가가 상당 기간 유지될 확률이 높다. 최근 물가 상승이 일시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서방 민주진영과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이 대립하면서 에너지와 상품 가격의 불안정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로코로나 봉쇄를 풀고 중국 경제가 리오프닝(reopening)에 나서면서 성장 엔진이 재가동되고 국제 유가가 상승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둘째, 인플레이션의 속도가 느려지고 연준 긴축의 영향으로 경기가 냉각되면 선거를 앞둔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팽창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을 통해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업체에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또한, 각종 인프라스트럭쳐와 반도체 및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그런데 향후 경기가 나빠지게 되면 과거 레이건 행정부가 했듯이 국방비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리는 한편, 동시에 교육, 의료 등 사회복지에 대한 예산 편성도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 물가에 영향을 주는 수요 측 요인이 다시 악화하면서 물가 오름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연준이 정부에 가세해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에 나선다면 인플레이션이 S자형 2차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에 벌어졌던 일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세가 완전히 꺾였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재는 경제와 물가에 관한 비관적 전망과 낙관적 전망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국면이다. 연준이 과거에서 얻은 경험으로 긴축의 고삐를 더 죌 경우 경기가 깊은 침체의 나락에 빠지면서 부도가 속출하고 금융 경색이 심화할 것이다.

연준이 다소 완화된 현재의 물가 수준에 만족하면서 긴축의 속도를 늦추거나 그만둘 경우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화폐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물가 오름세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비둘기파가 잔뜩 움츠러들었던 연준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연준은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과 유가 및 고용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긴축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시간을 벌어 경제를 연착륙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상이 가지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연준이 경기가 경착륙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경기가 경착륙의 조짐을 보이고 금융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한다면 연준 내 비둘기파의 목소리가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이상 조짐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발표된 4분기 대형 은행 실적에서 신용경색의 영향은 숫자로도 확인되고 있다.

바로 이들 은행의 대손충당금이 급증해 순익이 급감한 것이다. 대손충당금의 급증은 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계와 기업의 부도 위험이 크게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신용카드 빚과 자동차 대출금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마 중소형 은행들의 상황은 보다 심각할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어디선가 큰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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