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연준이 가장 경계하는 건 인플레 기대심리
단기지표에 일희일비하는 시장은 위험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유년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문동은(송혜교)의 복수극을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유년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문동은(송혜교)의 복수극을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행동한다. 그것은 범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혜택(benefits)을 기대하기 때문에 범죄를 행한다. 그 혜택은 금전적 이득일 수도 있고 심리적 추구의 충족일 수도 있다. 그 혜택이 커질수록 범죄는 증가한다.

따라서 어떤 사회에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어떤 범죄를 행함으로써 부담해야 할 비용(costs)이 그 범죄로부터 오는 혜택보다 커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범죄의 혜택에서 비용을 차감한 순혜택이 적어야 하고 그 값이 마이너스가 되어야 범죄가 감소한다.

그런데 범죄를 감소시키는 것은 실제 그 사회에서 범죄의 순혜택이 어떤 수준에 있는가 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범죄의 순혜택에 대한 범죄자의 기대이다. 어떤 사회의 범죄를 처벌하는 법규가 엄격하다 하더라도 범죄자가 기대하는 실제 형벌이 약하다면 범죄를 억제할 수 없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한국 사회에서 학교폭력(학폭)이라는 범죄에 관한 한 범죄자인 학폭 가해자가 기대하는 학폭으로부터의 순혜택이 매우 높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거의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그 가족이 사회의 권력층에 속한다는 이유로 고문에 버금가는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 즉, 범죄로부터 기대되는 형벌이라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조그만 이익을 얻기 위해 한 인간의 심신을 철저히 파괴하는 범죄 행위를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드라마에서 배우 정지소와 송혜교가 연기한 학폭의 직접적 피해자인 ‘문동은’은 처음 피해를 당할 때는 법과 제도에 의해 자신이 구제되고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 기대가 비현실적임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범죄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심지어 담임선생은 문동은이 항의하자 그에게 직접적인 린치를 가하기까지 한다. 그의 부모조차 그의 편이 아니다. 가해자 학부모의 금전적 회유에 넘어가 너무나 쉽게 합의해주고 돈을 챙겨 떠난다.

이렇게 법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암울한 사회 시스템 아래서 문동은은 자신이 직접 복수하는 자력 구제에 의지하고자 한다. 돈을 모으고 조력자를 고용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가해자들의 인생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사회 구성원의 기대가 철저히 왜곡된 비이성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불의한 시스템이다. 돈과 권력이라는 가치가 인권과 정의라는 선진 민주적 사회의 상식적 가치를 무력화시키며 구성원의 기대를 왜곡시킨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왜곡된 기대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기대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평균적 예상이다. 평균적 예상으로서 기대치는 확률의 개념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A가 어떤 범죄를 행했을 때 체포될 확률이 50%이고 체포되면 징역 2년을 산다고 하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이 경우 A의 기대 형벌은 확률(50%)에 형벌량(2년)을 곱한 1년이 된다. 만약 체포될 확률이 25%로 낮아지면 기대 형벌은 2년의 25%인 6개월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법에 규정된 형벌이 아무리 높아도 실제 체포될 확률이 낮거나 기소 또는 유죄 판결을 받을 확률이 낮다면 범죄의 기대 형벌은 낮아지고 범죄자의 기대 순혜택이 커진다.

따라서, 범죄의 기대 순혜택을 낮춰 범죄를 줄이려면 범죄자가 실제로 처벌될 확률이 높아야 한다. 만약 A의 범죄 행위에 대한 로비를 받은 경찰 수사관이 덮어 버린다든지, 경찰이 수사를 잘했지만 이를 기소해야 할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든지, 이를 기소했지만 법관이 가볍게 처벌한다면 기대 순혜택은 낮아질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법시스템의 정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어떤 범죄에 대해 시군(county)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경우 주(state) 경찰이 견제하고 FBI가 개입하기도 한다. 이들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방 방송국의 뉴스 채널에 제보해 언론을 통한 견제가 이루어진다.

한편, 사회 구성원의 왜곡된 기대를 교정해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무엇보다 물가 안정의 달성에 최우선 목표를 두는 중앙은행은 경제 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심화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기대 심리가 고착화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평균적으로 그러한 기대에 동의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광범하게 자리 잡으면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종업원도 그에 걸맞게 임금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만약 회사가 종업원의 임금 인상 요구를 거절해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낮을 경우 실질 임금이 감소하게 되어 능력 있는 종업원이 퇴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사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보수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임금 인상의 도미노 현상이 현실화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기미가 보일 때 금리를 올리고 긴축정책을 펼쳐 물가 상승 기대 심리의 확산을 저지하고자 한다. 최근 공개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12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은 연준의 이러한 의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연준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에 대한 경고다. 시장 참가자들이 연준의 정책을 오해(misperception)하여 과잉반응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그간 시장은 연준의 정책전환(pivot)을 기대하면서 거기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연준 관계자의 발언이나 경제 지표가 나오면 상승가도를 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연준은 반복하여 금리 인하가 조만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장에 대해서는 그런 기대를 갖지 말도록 경고하고 나섰다. 즉, 연준은 금리를 올려 상품·서비스 시장에서 물가 상승 기대를 잠재우는 한편, 자산 시장의 기대 심리까지 신경 쓰고 있다.

문제는 연준이 언급한 시장에 외환시장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금번 연준 의사록은 달러 금리는 길게는 수년간 높게 유지될 테니 쉽사리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담고 있다. 연준의 의지와 달러화 가치 상승 및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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