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셈법 따라 자신들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제도 설계"
이준한 "중대선거구제, 양대 정당 나눠 갖는 경우 빈번"

22대 총선을 1년여 정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중대선거구제’를 중심으로 선거구 제도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면 당장 내년 총선부터 도입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뿐더러 중대선거구제가 지역주의를 타파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중 선거구제 개편을 시도한 바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보다 넓은 범위의 1개 지역구에서 2~3인의 대표를 뽑는 방식이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는 1개 지역구에서 1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진다. 소선거구제는 지역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영남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에 호남 지역에서는 진보 정당에 몰표를 던지는 현상이 벌어지며 ‘거대 양당제 지탱 기반’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현재 전체 국회의원 수는 300명이며, 이 중 지역구 의원은 253명이다.
윤 대통령이 꺼내든 중대선거구제는 ‘텃밭’에선 불리하고 ‘험지’에선 유리하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석패하는 경우가 잦은 영남 지역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민주당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호남에서는 현행 제도에서도 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이 1, 2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여야 모두 반대가 크지 않다. 민주당이 신승한 지역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여당의 찬성 목소리가 높다.
다만 윤 대통령이 ‘지역 특성에 따라 2~4명의 인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민주당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식’ 중대선거구제는 수도권에만 국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부분적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그건 철저하게 계산된 이야기”라며 “셈법에 따라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선거제도를 설계하겠다고 하면 국민적 호응을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발끈했다.
여권은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소선거구제 대안으로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소선거구제의 여러 문제점이 너무 오래 드러났으니 선거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라며 “그 방법으로서 부작용이 중대선거구제보다 적다면 그거로라도 개혁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주 원내대표는 “유불리를 따지고 당리당략을 따지면 개혁이 있을 수 없다”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을 들었고, 국회의장이 정개특위에 2월까지 두 가지 복수안을 내면 전원위원회에 회부해 의견을 듣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는 중대선거구제의 지역 구조 타파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중대선거구제가 거대 양당이 지역 구도를 타파하는데 효과적이라는 현실적인 증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한 다른 나라 연구 결과를 보면 제3당, 제4당이 등장하는 것이 확인되기보다는 기존 양대 정당이 나눠 갖는 것이 오히려 더 빈번하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1993년 선거까지 정수가 2~5인 중선거구제를 채택했지만, 중선거구제가 계파 갈등과 부정부패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1996년 중의원 선거부터 소선거구제, 비례대표제로 전환됐다.
여야가 합의해 선거법을 개정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 교수는 “정개특위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합의해야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는 것인데,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갈린 상황이라면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