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방역 위기 여부에 따라 유가 급등 가능성 존재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영상미로 가득하다. 1999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장쯔이의 데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거대한 스케일과 과도한 분장으로 관객을 부담스럽게 하는 최근의 역사물들과 달리 장예모 초기 작품 같은 소담스러운 인간미가 빛난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회상’이다. 과거 흉노족이 명마를 타고 대지를 누비며 달렸을 것 같은 중국 북서부의 어느 마을 이야기다. 가을바람에 노랗게 익은 키 작은 풀들이 하늘거리고 하얀 자작나무가 온통 언덕을 수놓는 그림 같은 풍경미가 흥겹게 다가오는 시골이다.
영화는 부친상을 당해 궁벽한 산촌의 조그만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마을 촌장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멀리 떨어진 읍내 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운구를 모셔와 상을 치러야 하는데 어머니는 굳이 전통식으로 상여를 옮겨와야 한다고 고집한다.
아들도 어머니를 설득해 보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그녀의 완강한 태도를 꺾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눈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젊은 시절 찍은 한 장의 오랜 사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장쯔이가 연기한 젊은 시절 어머니의 이름은 ‘디’이다.
그녀가 꽃처럼 아름답던 40년 전 오지 시골마을 학교에 한 청년이 선생으로 부임한다. 디는 도회지에서 온 지적인 그에게 첫눈에 반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을 훔쳐보고 길목에서 기다리면서 사랑을 점점 키운다. 마침내 선생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까지 이른다.
그런데 선생은 디에게 머리핀 하나를 선물하고 인근 도시로 일이 있어 떠난다. 그에게 따뜻한 음식을 전해주려 하지만 그를 실은 달구지는 저 멀리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간다. 급한 마음에 내달리다 넘어져 사기그릇은 깨지고 머리핀도 잃어버린다.
디는 그 머리핀을 찾으려 자작나무가 화려한 언덕길을 수백 번도 넘게 오간다. 결국 머리핀은 자작나무 울타리에서 찾지만 겨울이 와도 선생님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버려진 교실을 청소하고 하얀 문풍지를 바르고 예쁜 장식도 달며 그리움을 달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친 디는 폭설과 삭풍이 살을 에는 길을 매일 나가 선생을 기다린다. 결국 기가 다한 그녀가 길에서 쓰러지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다그쳐 선생에게 수소문하게 한다. 마침내 선생이 돌아오고 사랑이 결실을 맺어 부부가 된다. 그렇게 40년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 이야기를 회상한 디의 아들은 아버지의 운구를 모셔오는 그 길이 어머니에게 단순한 도로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 길은 애타게 첫사랑을 맞이하는 젊은 어머니가 서 있던 곳이고 떠난 사랑을 목숨 걸고 기다리던 길이었고 인생의 노정을 함께 한 길이었다.
결국 아들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사람을 모은다. 동네 사람들도 돕고 나선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옛 제자들이 모여들어 상여를 직접 든다. 눈이 내리는 북방의 어느 길 위에서 그렇게 낯선 초상이 치러진다. 인간미를 잃은 현대인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눈 내리는 길에서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그렇게 멀지 않은 1999년이라는 사실이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전 세계가 정보통신(IT) 신기술에 흠뻑 빠져 있던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다. 이때에도 영화에 비친 중국 시골마을의 모습은 유리창도 없이 교실이 방치된 저개발 상태 그대로였다.
오래되지 않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누르고 세계를 제패할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중국이지만 지역 간 발전의 격차는 너무나 크다. 경제특구로 지정되었던 남동부 연해 지역의 도시는 선진국 턱밑까지 경제가 발전했지만 거기서 배제되었던 서부와 북부는 아직도 저개발 상태 그대로다.
그 가운데 하남성(Henan)은 오랜 고도 낙양과 개봉을 품고 있는 중원의 핵심이다. 중화 한족 문명의 발상지이고 물류가 교차하는 사통팔달의 요지이다. 그런 하남은 디가 선생을 만나던 1958년 시작된 대약진 운동의 여파로 수백만이 아사했던 슬픈 이야기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편, 하남의 성도인 정주(Zhèngzhōu)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에는 십만 명이 넘는 직원이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주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공장이 코로나로 봉쇄되면서 수천 명의 직원이 락다운에 항의해 집단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신장지구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화재의 인명 피해가 락다운으로 인해 두 자릿수로 커지자 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결국 시진핑 정권은 제로 코로나를 완화해 방역과 봉쇄의 수위를 크게 낮추기로 했다.
중국이 락다운을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할 경우 국제 원유시장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 유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배럴당 70달러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세계 1위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 증가가 예상됨에도 왜 이렇게 유가는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내년에도 지속되면서 고물가 속에 경기 침체가 초래될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여타 원유 생산국 모임인 오펙 플러스의 감산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만으로는 최근의 유가 약세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와 관련해 유가 분석가인 센(Amerita Sen)은 최근 유가가 현저히 저평가되었으며 중국의 경제 재개로 배럴당 100달러 위로 오를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결국 현재 원유시장은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 후 발생할 중국의 방역 위기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올해 초 코로나 백신과 1인당 응급실(ICU) 병상 수급에서 중국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던 홍콩도 심각한 방역 위기를 겪었다. 이에 비추어 중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더나와 화이자 같은 m-RNA 기반의 백신이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60대 이상 인구가 2억 6300만에 이르고 80대 이상만 3500만인 중국에서 봉쇄 해제는 제2의 우한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오미크론의 독성 약화를 강조하지만, 확산 우려는 여전하다.
내년 상반기나 빠르면 1분기 중국의 코로나 확산 속도에 따라 국제 유가는 반등을 모색할 것이다. 코로나로 중국 경제가 다시 봉쇄되는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와 맞물리면서 국제유가는 내년 하반기가 가까워지면서 급격히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연준의 긴축은 또 한차례 강화될 수도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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