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인플레 둔화에 통계적 착시 효과
근원 소비자물가 아직 높은 수준
연준의 결연한 긴축 의지 관건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는 아프리카 서북단에 있는 금융센터다. 모로코 최대 도시로 인구가 500만에 달한다. 그런 대도시 카사블랑카를 사람들은 낭만의 장소로 기억한다.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와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만든 히긴스의 감미로운 노래 때문이다.

영화에서 전설적인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은 열렬하면서도 가슴 시린 사랑의 명대사를 줄줄이 남긴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던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전쟁의 향방을 가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명장 롬멜이 이끌던 독일 전차부대가 연합군을 내쫓고 수에즈 운하와 지중해, 그리고 아랍의 석유 수송로를 위협했다.

연합군도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절박감에 몽고메리를 지휘관으로 급파했다. 미국의 절대적인 군수 물자 지원에 힘입어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영국군은 마침내 그해 가을 ‘엘 알라메인’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간 밀리기만 하던 영국 육군이 거둔 첫 번째 승전보였다.

이 전투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오랜만에 모든 교회의 종을 일시에 타종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이로써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종결이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시작의 끝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시작의 끝(the end of the beginning)’이라는 말은 처칠의 혜안을 보여주는 명구로 회자된다.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치열하게 벌어지던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에서 소련군이 승리하면서 2차대전의 향방이 극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미국을 위시한 각국은 또 다른 전쟁을 치열하게 치르고 있다. 바로 40년 만에 최악인 ‘물가와의 전쟁’이다. 그 최전선에 서 있는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결연한 의지로 긴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연준이 벌이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향방에 실낱같은 희망을 던질 호재가 나왔다.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7%대 상승에 그쳤다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연준이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ore CPI, 에너지와 식료품 제외)도 전월 대비 0.3% 올라 예상보다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자 온갖 미디어에서 물가가 드디어 정점을 보았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왔고 발표 당일 나스닥 주가는 7% 넘게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까지는 큰 악재가 없다고 판단한 시장은 상승 랠리를 지속할 기세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과연 고점을 본 것일까? 많은 투자자가 기대하던 물가 피크아웃(peak out)이 마침내 온 것일까? 연준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고강도 긴축의 효과를 본 것일까? 불행히도 현재로선 그에 대하여 쉽사리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우선 현재 물가 상승 속도의 저하가 다분히 인위적인 요인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중간선거를 앞두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로 막대한 양의 전략비축유(SPR)가 매주 방출되면서 휘발유 가격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텍사스 프리포트에 있는 전략비축유 저장소 /연합뉴스
텍사스 프리포트에 있는 전략비축유 저장소 /연합뉴스

바이든 취임 당시인 작년 초 6억 3800만 배럴에 달했던 전략비축유 규모는 인플레이션이 8.5%를 넘었던 5월부터 그 보유량이 매주 1% 이상씩 줄어들었다. 6월 들어 인플레이션이 9%를 넘어서자 방출의 속도를 높인 전략비축유는 그 보유량이 전월 대비 5% 이상씩 감소했다.

전략비축유 규모는 결국 최근에는 3억 9600만 배럴로 감소해 2020년 당시 고점 대비 40%나 줄어들었다. 그 덕택에 지난 6월 갤런당 5달러를 넘었던 휘발유 가격도 상승세가 꺾였다. 9월에는 고점 대비 30% 낮은 갤런당 3.65달러를 기록했다.

둘째로 10월 물가 상승의 속도 저하가 소비자물가지수의 8.5%를 차지하는 의료서비스 가격의 하락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의료서비스 가격이 전월 대비 0.6%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서비스 가격의 하락은 건강보험료의 전년 동기 대비 4% 하락에 크게 기인했다.

아마도 내년 건강보험료가 최소 6% 이상 오를 것이라고 회사로부터 통보받은 많은 이들은 ‘무슨 소리냐’며 의구심을 나타낼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의 물가 통계가 상당히 미진하기 때문이다. 물가 통계를 작성하는 미 노동부 통계국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미국 건강보험의 범위가 워낙 다양해 보험료가 몇 퍼센트 올랐는지 일률적으로 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부는 보험회사가 거둔 보험료 수입에서 보험금 지급 비용 등을 공제한 유보이익(retained earnings)을 기반으로 보험료 지수(insurance index)를 계산한다.

그 보험료 지수의 변동이 물가지수에 반영된다. 유보이익이라는 회계적 개념에 기반한 간접 방식으로 물가를 추정하다니 현실 물가를 제대로 반영할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노동부가 보험회사의 유보이익을 집계한 후 1년에 한 번씩만 이를 업데이트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바로 10월 물가가 노동부의 건강보험료 물가 업데이트를 처음으로 반영하는 달이다. 그러다 보니 10월 건강보험료 하락은 사실 전년도인 2021년 전체의 평균적 건강보험료, 정확히는 보험회사 유보이익의 하락을 반영한다. 뒷북을 쳐도 한참 늦게 치는 격이다.

그렇다면 2021년에는 왜 건강보험료가 하락했다고 나올까? 그것은 전년도인 2020년에 코로나 대응책에 힘입어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보험금 비용 지출을 줄인 보험회사들의 유보이익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인 2021년에는 전년도의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감안하면 10월의 실제 근원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상승보다는 훨씬 더 상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물가를 끌어내린 과일·야채 항목은 변동성이 매우 크다. 또한, 전월 대비 0.7% 하락한 의류 가격은 그간 쌓인 재고 정리에 영향받았을 것이다.

반면, 휘발유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은 전략비축유 방출이 끝나가고 겨울 난방유 소비가 커짐에 따라 상승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향후 월세·임금 등 물가 기대심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 주요 항목들이다. 바로 이 인플레 기대심리와의 전쟁에 연준의 승패가 달려 있다.

연준은 과연 승리할까? 답은 유보적이다. 연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결연한 긴축 스탠스를 지속한다면 인플레이션과 전쟁에 끝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연준이 지난 6월에 했던 것처럼 방만한 자세로 돌아간다면 그 끝의 시작도 희미할 것이다. 연준과 파월 의장의 진심이 쉽게 달라질 것인지 어느 때보다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