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노동 가능···'주' 아닌 '연' 단위
양대노총, 개혁안 반발 "고용 질 저하"
노동시간 유연화에 야권 비판 확산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노동시장 개편안을 내놨다. 기존 '주 52시간 근무제'를 최장 '주 69시간 근무제'로 수정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재 노동시간 연장을 두고 국민의힘은 찬성 입장, 더불어민주당은 '더 일하는 시장'이 되는 상황에 반대 입장이다. 불과 4년 만에 사실상 노동시간 연장이 추진되는 것이어서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여야 간 치열한 입법 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2일 윤석열 정부가 구성한 노동시간 개혁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는 현재 주 단위로 적용되는 연장 근로시간 관리를 연(年) 단위로 확대하는 권고안을 냈다. 정부가 이 권고안을 따를 경우 노동자는 주당 최장 69시간까지 근무하게 된다.

하루 24시간 중 연속 휴식 11시간, 법정 휴게시간(8시간 근무 1시간, 4시간 근무 30분 이상) 1시간 30분을 빼면 하루 일하는 시간은 11시간 30분이다. 여기에 주말 1일 근무를 더해 주 6일을 근무할 경우 최대 주 69시간이라는 근무 구조가 나온다. 현 52시간보다 매주 17시간가량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번 노동시장 개혁안은 '더 일하고 더 받는' 구조다. 중소기업 등이 주 52시간제 도입 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었던 만큼 연구회는 이전보다 탄력적인 근무 시간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로 시간은 국제 평균보다 길다. 때문에 연구회 권고대로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가 길어지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과로 근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반발이 예상된다. 근로복지공단의 과로 기준은 주당 평균 노동시간 60시간인데, 개편안대로라면 건설·도소매 등 수요 탄력성이 높은 산업에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주 92시간까지 장시간 노동도 가능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위원장은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가 확대될 경우 특정 주에 지금보다 훨신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집중되고, 불규칙한 노동이 반복돼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쉬자는 개혁안에 양대노총도 장시간·저임금 노동체계로 회귀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연구회 개혁안이 임금 하향 평준화, 노동의 질 개악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대부분 사업장에 노동조합도 없는 현실,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뿐인 자율 선택"이라면서 "유연노동시간제 확대는 비정규직이 양산돼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규제 사각지대 양산,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노총 역시 "사용자 편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한국 현실에서 사용자는 힘의 우위를 통해 이를 밀어붙이고, 정부가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부는 노동자들의 휴가·휴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자율이라는 원칙으로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개편 권고안에는 연속 휴식 보장을 24시간 이내에서 계산하라는 문구가 없어 야근을 한 뒤 새벽에 퇴근하면 퇴근한 새벽부터 휴식시간을 계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더 몰아서 일하게 되면 노동 강도는 더 올라가, 과로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권남표 공인노무사는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문"이라며 "국회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막고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의원은 "얼마 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L 사업장은 올해만 42일간 특별연장 근로 인가를 승인받은 상습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이었다"며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고 입법 목적을 수호하려는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사 출신 이기중 정의당 부대표는 "연구회가 하자는 대로 하면 과로사가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손잡은 탄력근로제 확대로 '바쁠 때 바짝' 주 64시간 일하는 게 가능했다"며 "사용자와 근로자의 자유로운 합의라는 말은 현생엔 적용되지 않는 법적 문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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