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응 위법 밝혀지면 국가배상 가능
국가배상법·경찰관직무수행법 근거
2011년 우면산 사태·2012년 오원춘 사건 국가배상책임 인정
박희영 용산구청장, 형사처벌 가능성 높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가운데 국가 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경찰이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며 국가 배상 책임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8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부 유가족의 법률 대리를 맡게 된 사실을 밝혔다. 민변은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오는 15일과 19일 두 차례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경청할 예정이다.
국가나 지자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배상법’이다. 국가배상법 2조 1항(배상 책임)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국가배상법에 더해 경찰관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경찰관 직무수행법’도 근거가 될 수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관이 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려가 있는 경우’란 천재, 사변, 인공구조물의 파손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위험한 동물 등의 출현,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 등으로 규정된다.
지난달 29일 경찰은 이태원 참사 약 4시간 전부터 11건의 압사 위험 신고를 받았다. 경찰 자체 규정상 112 신고내용은 총 5단계(코드0~4)로 구분되는데, 참사 당일 접수된 신고 중 총 8건이 긴급 출동이 필요한 ‘코드1’과 ‘코드0’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코드2’ 2건, ‘코드0’ 1건이었다. 이에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국가배상책임 및 경찰관 직무집행법 업무 태만 등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문 경우가 있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사태 당시 법원은 서초구가 산사태 경보를 제때 발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초구청장에 대해 4억7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해서 형식적 의미의 법령 근거가 없더라도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2012년에는 여성을 집안으로 끌고 가 살해한 ‘오원춘 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112 신고했는데도 초동 수사가 미흡해 생명을 잃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심 재판부는 경찰의 직무상 과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경찰이 제대로 출동했어도 범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국가책임을 인정해 998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공무원의 잘못이 있었더라도 무조건 배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995년 5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경우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무단 증축을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공무원의 잘못과 붕괴 사고 사이에 인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단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 대응이 위법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국가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장윤미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배상 책임이라는 것은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이니 고의과실로 그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고, 원인 진단이 정확하게 돼야 하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현재까지 나온 상황들만 보더라도 국가의 책임이 없는 방향으로 참사의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라고 내다봤다.
장 변호사는 “핼러윈 당시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상황에서 용산구청장 주재 회의도 없었기에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국가배상이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의 법적 책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가 배상 책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고의 과실이 참사로 빚어졌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이런 구조가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을 제어할 수도 있기에 용산구청장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은 논의가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라며 “현재 받고있는 혐의인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정도는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