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크레딧스위스 자산, 리먼의 2.7배
붕괴하면 세계 금융시장 마비 우려
면밀한 감시와 당국 개입 불가피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집 마당 안팎으로 꽃과 나무를 키우면 사시사철 새와 나비와 꿀벌이 날아든다. 키 큰 해바라기 줄기 위에 노랗게 핀 선플라워 위에 간간이 날아와 작은 날개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퍼덕이며 꿀을 맛보는 벌새인 허밍버드를 보노라면 왕성한 생명력이 절로 솟아난다. 

늦가을 잎새가 모두 떨어진 앙상한 가지 위에 고고히 앉아 청아한 소리로 노래하는 붉은 새 카디널을 보면 청량한 마음이 가득하다. 온통 세상에 청록색의 풀빛이 가득할 때 담장에 날아와 사뿐히 앉아 있는 파랑새 블루버드도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노랑새 카나리아는 실생활 속 자연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주로 애완용으로 길러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오염된 공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나리아는 광부들이 갱도 속 유해가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금융시장에서도 큰 위기가 찾아오기 전 나타나는 재앙의 조짐을 알리는 카나리아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멀쩡하게 보이는 유서 깊은 금융기관에서 일선 직원들이 이탈하는 것이다. 또 다른 조짐은 그 금융기관의 CEO가 언론에 나와 ‘우리는 전혀 문제없다’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파산을 맞았던 리먼 브라더스가 대표적인 예다. 2007년 투자은행업계 4위로 포천지 랭킹에서 미국 내 47위 기업으로 선정됐던 리먼 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확산하면서 이듬해 파산했다. 그러나 파산 신청 수개월 전까지 이 회사의 CEO는 재무상 큰 문제가 있음을 부인했다. 리먼 쇼크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며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그런데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해 연초만 해도 150 베이시스 포인트(150bp, 1.50% 포인트)를 넘지 않던 리먼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3월 중순 들어 급등하면서 300bp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신용부도스왑은 채권의 부도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파생상품이다.

리먼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금융회사는 다른 금융기관과 신용부도스왑을 맺고 프리미엄을 지급함으로써 그 채권이 부도가 날 경우 스왑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손실을 보전받게 된다. 따라서, 화재가 잦은 지역에서는 화재보험료가 오르듯이 부도위험이 커지면 신용부도스왑의 프리미엄도 오르게 된다. 시장은 이미 3월에 리먼의 부도위험이 상당히 컸다고 보았다.

그러나 리먼이 실제 파산 신청을 한 것은 그보다 6개월이 지난 9월이었다. 당시 리먼 경영진은 우리나라 산업은행을 포함한 다수의 금융기관과 매각 협상을 벌이면서 회사 사정은 여전히 괜찮다고 강변했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위기의 폭풍 속에서 리먼을 포함해 부동산담보대출채권(MBS)을 활발히 거래하던 금융회사의 자본상태가 괜찮을 수는 없었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꾸준히 올리고 악성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도나면서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터져 MBS 마켓이 붕괴 위기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수신과 차입금으로 구성된 금융회사의 부채는 그대로인데 보유자산 가치가 급락하면 자기자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당국이 강제로 개입해 영업을 정지시킨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줄어든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보유자산 매각에 나선다. 심지어는 그 금융회사의 돈 잘 버는 사업부나 금융회사 전체를 매각하려 들기도 한다.

2008년 9월 15일 런던 카나리와프에 있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사무실에서 한 근로자가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9월 15일 런던 카나리와프에 있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사무실에서 한 근로자가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것이 2008년에 벌어졌던 일이다. 수익규모로 투자은행 업계 5위였던 베어스턴즈가 JP 모건 체이스에 매각되었고 업계 2위 메릴린치도 뱅크오브어메리카에 팔렸다. 리먼 브라더스도 간절하게 매각 파트너를 찾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파산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최근 156년 역사를 지닌 스위스 2대 금융기관인 크레딧스위스(CS)의 5년 만기 채권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이 한때 320포인트를 넘었다. 작년 2월 15달러에 이르렀던 주가는 최근 4달러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신용시장과 증시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증거였다.

크레딧스위스의 이러한 신뢰의 위기는 일련의 리스크관리 실패가 반복되면서 초래됐다. 작년 3월 크레딧스위스가 자금줄 역할을 하던 스플라이체인 금융업체인 그린실(Greensill) 캐피털이 파산했다. 이로써 크레딧스위스를 믿고 투자했던 많은 투자자들이 거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그 직후 터진 아케고스(Achegos) 캐피털 사태는 크레딧스위스에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안겼다. 레버리지 투자를 주로 하던 빌 황의 아케고스가 주가 하락으로 인한 마진콜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돈을 빌려주었던 크레딧스위스는 최소 47억 달러(6조7000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크레딧스위스에게 보다 뼈아픈 것은 단지 손실을 보았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1988년 투자은행 업계 수위를 다투던 퍼스트 보스턴(First Boston) 사를 인수한 이래 초대형 투자은행의 상징인 9개 벌지 브래킷(bulge bracket)의 일원으로서 쌓아온 명성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실력 있는 직원들이 은행을 떠났고 금융그룹의 회장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새로 선임된 콜러(Kohler) 회장이 투자은행 부문의 핵심 사업부를 매각하고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과거 리먼 붕괴 때처럼 위기의 본질이 시스템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국채인 길트 위기와 마진콜 사태에서 보듯 연준을 포함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이 주식 및 채권시장 붕괴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금리의 급속한 인상과 달러화의 초강세로 국채뿐만 아니라 MBS, 고위험채권, 정부채인 소버린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는 결국 이들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자산 가치 붕괴를 가져오고 자본적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자본 확충을 위한 자산 매각에 나서고 투자와 여신을 줄이면서 부도 위험은 더 커진다. 금융기관 간에는 거래 상대방 위험인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상승하게 된다. 

결국 시장위험이 서서히 금융기관 위기(banking crisis)로 전이되면서 크레딧스위스와 같은 거대 금융기관도 안전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그런데 만약 이런 초대형 금융기관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하면 그 효과는 리먼 사태와는 비교하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리먼 브라더스의 보유자산이 600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반면 크레딧스위스가 관리하는  자산 규모는 1조 6000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크레딧스위스의 정확한 재무상태를 알기는 어렵다. 매일매일 보유자산 가치가 변동하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하는 경영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이고 정책당국의 신속한 개입이 필요한 까닭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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