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전 세계적 금리 인상으로 피하기 어려워진 리세션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있는 펜스를 통해 보이는 페덱스 간판. /로이터=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있는 펜스를 통해 보이는 페덱스 간판. /로이터=연합뉴스

2000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예상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박스 오피스 매출은 4억3000만 달러에 달했고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영화의 줄거리는 상당히 간결하고 평이하다.

미국 운송업체인 페덱스(FedEx) 직원이었던 ‘척 놀랜드’는 전용 운송기를 타고 비행하다 남태평양 상공에서 폭풍우를 만난다. 통신 장애로 항로를 이탈한 비행기는 이내 추락하고 그는 구명보트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그가 파도에 밀려 표류한 곳은 무인도였다.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무인도에서 척은 생선을 잡아 연명하며 사람 얼굴을 그린 배구공 ‘윌슨’과의 대화로 외로움을 달랜다. 그렇게 4년을 넘게 버틴 척은 뗏목을 만들어 겨우 섬을 탈출하고 구사일생으로 지나가던 배에 구조된다. 힘든 경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약혼녀는 다른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뜻하지 않은 외부적 충격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줄거리와 톰 행크스의 명연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런데 지난 주말 월가는 영화 중 주인공이 일하던 회사인 페덱스의 실적 경고로 짙은 암운에 휩싸였다.

UPS, DHL과 함께 세계 3대 운송업체 가운데 하나인 페덱스의 연간 총수익은 930억 달러가 넘고 시가총액은 423억 달러에 이른다. 이 회사의 회계연도는 5월 말에 끝난다. 이번 주 목요일인 9월 22일에는 8월 말에 끝난 1분기 실적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런데도 지난주 금요일 장이 열리기 전 페덱스의 CEO인 수브라마니암이 1분기 실적에 대한 경고를 내놓았다. 주당순이익(EPS)이 월가 예상치인 5.14달러보다 35%나 낮은 3.33달러에 불과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례적인 실적 경고는 시장의 충격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페덱스 주가는 금요일 하루에만 20%가 넘게 하락했다. 1978년 이 회사 주식이 증시에 상장된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전체 시장이 20% 넘게 폭락했던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에도 이렇게 큰 폭으로 하락하지는 않았었다. 

문제는 전체 시장이 보인 반응이었다. 페덱스 이외에 별다른 뉴스가 없었던 금요일 오전 미국 주식시장은 2%에 가까운 급락세를 연출했다. 페덱스의 실적 악화 경고가 이 회사에 국한된 문제였다면 시장이 그처럼 패닉에 가까운 급락세를 보였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페덱스의 무엇이 시장을 그렇게 암울한 분위기로 끌고 갔을까? 그것은 이 회사가 보는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이 180도 달라졌다는 것에 있었다. 그간 페덱스 경영진은 세계 경제가 다소 둔화를 겪겠지만 회사 순익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닐 것이라 보았다.

그런데 지난 6월 새로 CEO에 취임한 수브라마니암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침체(리세션)에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가 말한 것이 미국 경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라는 사실이었다. 즉, 그는 글로벌 리세션(global recession)을 언급했다.

1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시장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서 근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시장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서 근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실질 GDP가 감소하면서 경기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글로벌 리세션은 네 차례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중반 제4차 중동전쟁인 욤 키푸르 전쟁과 더불어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로 촉발됐다. 이 당시 국제유가는 4배가 올랐고 미국 소비자물가는 12%가 넘게 뛰었다.

두 번째 글로벌 리세션은 1980년대 초반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그리고 제2차 오일쇼크에 의해 발생했다. 당시 국제유가는 전년 동기 대비 150% 가까이 급등했고 미국 인플레이션은 최고 15%에 이른 후 상당 기간 두 자릿수를 보였다. 

세 번째 글로벌 리세션은 1990년대 초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에 뒤이어 터진 걸프전쟁이 원인이었다. 이때에도 국제유가는 전년 대비 80% 가까이 상승했고 미국 인플레이션도 위험 수준인 6% 중반대까지 올랐다.

네 번째 글로벌 리세션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더불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찾아왔다. 이 당시에도 국제유가는 전년 대비 100% 가까이 급등했다. 미국 인플레이션도 경계 수준인 5% 중반까지 상승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거 사례와 비교해 현재 상황은 어떨까? 작년 가을 국제유가는 전년 대비 100%가 넘게 올랐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격적인 전략비축유(SPR) 방출로 최근 유가는 단기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 급등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전략비축유 방출이 없었다면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를 위협했을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적인 현상은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이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970년대 중반 기준금리를 12%대로 올렸고 1980년대 초에는 기준금리가 20%를 넘어섰었다. 1990년대 초에도 기준금리는 8%가 넘었고 2000년대 중반에도 1%에서 5.25%까지 상승했다.

최근에도 연준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6개월 만에 2% 넘게 기준금리가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연준의 금리 인상 행보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가세하고 있다. 올해 들어 90여 개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했고 40개가 넘는 나라의 중앙은행이 최소한 한 번 이상 자이언트스텝으로 0.75%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금리 인상은 향후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통상 금리 인상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경기에 반영된다. 과거 경험을 통해서 보면 이 정도의 강력한 금리 인상 후에는 경기 침체가 뒤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초에는 당시 세계 2위 일본 경제가 버티고 있었고 2008년 위기 당시에는 중국 경제가 건재했다. 현재에는 전 세계가 달러 강세와 물가 급등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럽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중국 경제도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즉,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가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과 흡사하다. 당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몇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20%가 넘는 금리 인상이라는 극약 처방과 10%가 넘는 실업률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경기가 회복했다. 최근 인플레이션 위기를 단기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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