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도藥] : 마약도 '약'이다
마약류 감정 건수, 2020년 '6만 2106건'
의료용 마약 도난·분실 3년 동안 3만 건
전문가 "마약 유통 과정 사각지대 없애야"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픽사베이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픽사베이
마약도 약이라고 한다. 치매와 뇌전증 등 다양한 질병에 효능이 있어서다. 해외에선 의약품으로 대마 유통이 합법화되는 추세다. 한 제약사는 마약 하나로 연 매출 5584억을 찍었다. 세계 시장 규모 4조원의 엄청난 고부가가치 시장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의약품 사용조차 제한적이다. 뇌전증 환자에게만 일부 합법화됐다. 대마 성분인 CBD는 특히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는데,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국내서도 마약관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CBD 성분을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지속해서 제기된다. 과연 국내 치매 환자도 CBD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 여성경제신문이 따져본다. [편집자주]

① 의약품되면 4조 가치 '마약'···합법화 목소리 커진다
② 용산 미군기지서 시작된 마약 불법화...정작 미국은 산업화 성공
③ 의료용 대마 합법화 걸림돌···도난·오남용
④ [기자수첩] 겉포장뿐인 尹 치매 공약

의료용 대마 칸나비디올(CBD) 전면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마약류인 대마의 오남용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용 마약류 감정 건수가 줄어들지 않는 데다, 마약을 관리하는 의료시설에서의 마약 도난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국내에선 의료용 마약 오남용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의료용으로 허가된 마약류가 빼돌려져, 처방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마약류는 현행법상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 의사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일반인이 소지만 해도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의료용 마약류의 일반인 투약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가 조사한 '연도별 마약류 감정 건수'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총 2만 8633건이던 마약류 감정 건수는 2020년 6만 8106건으로 3배가량 늘어났다. 특히 단발성 마약 투약 건수보다 장기적으로 마약을 남용한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마약류 감정 건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마약류 감정 건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마약 감정은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로 나뉘는데 단발성이 아닌, 신체에 누적된 마약 성분 검출을 위해선 모발검사를 진행한다. 이 모발검사 의뢰 마약 반응 양성 건수가 2016년 1213건에서 2020년 2217건으로 약 1000건가량 늘었다. 

이처럼 마약 감정 건수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허술한 의료용 마약 관리 체계를 꼽는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용 마약류 도난·분실 사고 현황'을 보면, 2017년~2019년 3년 동안 도난 혹은 분실된 의료용 마약류가 총 3만 5214개로 집계됐다. 

종류별로는 불면증 치료를 위한 '졸피뎀'이 9989건으로 가장 많았다. 불안·정신신체장애 치료 목적인 디아제팜이 2836건, 긴장·우울증 치료를 위한 에티졸람 등이 2751건으로 뒤를 이었다. 

2017년~2019년, 의료용 마약률 도난 및 분실 사고 현황 /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2017년~2019년, 의료용 마약률 도난 및 분실 사고 현황 /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대체로 마약류를 취급하는 의료기관에서 약을 갈아서 반출하거나, 일부 마약을 취급할 수 있는 병원 직원이 빼돌리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현재 사용 중인 의료용 마약도 오남용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면서도 "합법화를 추진 중인 칸나비디올(CBD)의 경우는 대마 줄기에서 추출된 성분이라 마약 검출도 어려운데 반대로 말하면 이를 악용하기 쉽다는 것. 관리 체계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정작 마약 중독자에게 좋은 일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용 마약은 경찰청과 식약처가 직접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관리한다.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제조 및 유통 전 과정을 전산시스템에 등록하는 방법이다. 납품된 의료용 마약의 일련번호를 기준으로 납품받은 병원과 약국 등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 캡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마약 오남용 방지 시스템이 있더라도 마약을 빼돌릴 수 있는 사각지대는 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말기 암 환자 등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 처방되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경우에도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으로 위장해 처방받는 경우가 있다"면서 "환자 개인에 대한 의사의 진단 과정을 촘촘히 해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관리 체계 개편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약제부 백진희 교수 연구팀은 '의료용 마약류의 관리지침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의료기관에서 사용 기한이 만료된 마약류를 반납받지 않고 있고,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라 사용되지 않는 마약류 등이 수거되지 않고 환자 또는 보호자 개개인이 보유하고 있어 오남용의 우려가 심각하다"며 "이같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부는 2022년도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의료인 대상 의료용 마약 사전알리미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전알리미 서비스는 처방내역 정보제공 및 서면 경고제다. 1단계 사전알리미(정보제공) 발송 이후 의사의 마약류 진통제 처방‧사용 내역을 추적관찰‧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2단계 사전알리미(경고)가 발송된다.

2021년 마약류 처방 현황 /식품의약품안전처,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2021년 마약류 처방 현황 /식품의약품안전처,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의 마약류안전정보지에 따르면, 서면경고 후 오‧남용 의심 처방 의사 수는 사전알리미 발송 시스템 도입 후 69.3% 감소했고, 처방 건수(71.8%)와 환자당 처방량(12.1%)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김기웅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본지에 "대체로 통증 환자들이 마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많은데, 진료를 보는 의사는 통증의 정도를 판단해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한다"면서 "객관적인 척도가 의사의 판단이기 때문에, 오남용 사례는 의사 개인의 양심에 따라 달린 것. 더욱 객관적인 관리 체계로 뒷받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지난해 국내 전체 국민 2.7명 중 1명이 의료용 마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는 지난달 28일, '2021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현황 통계'를 발표하면서 "2021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수는 총 1884만명으로 전년 1748만명보다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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