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자체 유동성 문제로 뱅크런 시작
CPI 호조 전망 등 Fed 종속 변수 무용지물
샘뱅크먼프리드, 창펑자오 트윗이 일 키워

코인 시장에 불어닥친 신용 붕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강달러가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와중에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에서 유동성 리스크가 드러나면서 코인 시장으로부터의 엑소더스(Exodus)가 전개되고 있다.
10일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1만600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2020년 11월 이후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도 11% 넘게 급락해 1200달러대로 내려 앉았다. 비트코인은 전날에도 10% 넘게 폭락했다.
특히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인 FTX 인수 의사를 밝힌 바이낸스가 하루 만에 계획을 철회하면서 시장의 공포심은 더 커졌다. FTX가 발행하는 코인 FTT는 전날 80% 폭락한 데 이어 이날도 40% 넘게 추락하면서 뱅크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최근 72시간 동안 무려 60억 달러(8조2000억여 원)의 고객 자금이 빠져나갔다.
한국의 빗썸 거래소에서도 대부분 코인이 급락세다. 이날 오후 1시 30분 빗썸에서 거래되는 1비트코인 가격은 2357만원으로 24시간 전 대비 10% 넘게 하락했다. FTX 사태 이전 220만원을 넘던 이더리움도 3거래일 만에 160만원대로 추락했다.
금융권에선 내·외부 복합변수가 작용해 발생한 이번 사태가 지난 5월 천문학적인 피해를 발생시킨 테라·루나 때보다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크다. 더 나아가 암호화폐 판 리먼브라더스 사태란 얘기까지 나온다.

코인 시장은 이날 오후 10시 30분 발표 예정인 미국의 소비자물가(CPI) 발표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9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8.2% 상승해 8월 상승폭인 8.3%에서 소폭 하락에 그쳤다. 이에 반해 10월 CPI는 7.9%를 기록해 9월보다 둔화할 것으로 전망돼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정책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연준 정책에 종속된 기대감이 자체 유동성 위기로 비롯된 암호화폐 급락세를 멈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SK증권 리서치센터는 "루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경색에 FTX가 구제금융을 지원했던 것과 매우 대조된다"며 "리먼브라더스 부도 사태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창펑자오 말 한마디에···대규모 뱅크런
샘뱅크먼프리드가 버블 키워온 측면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방불케 하는 이번 유동성 사태는 창펑자오 바이낸스 대표와 샘뱅크먼프리드 FTX 대표 간에 트윗이 오가면서 시작됐다. 지난 11월 7일, 창펑자오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FTX 거래소의 토큰인 FTT를 매도할 것이라고 트윗하자, 샘뱅크먼프리드는 해당 토큰을 개당 22달러에 매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창펑자오가 이를 거부하며 청산 의지를 보이자 투자자들이 FTX 거래소에서 자금을 인출하면서 뱅크런이 시작됐다. 이 결과 FTT 가격이 22달러 밑으로 크게 하락하는 동시에 샘뱅크먼프리드와 연관된 코인들을 중심으로 코인 시장이 급락세를 보였다.
투자자의 갑작스런 인출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FTX 거래소가 출금을 막은 상태에서 바이낸스에 인수를 요청했다. 이에 바이낸스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수의향서(Non-binding LOI)에 서명하며 인수 검토 절차에 들어갔고 급락세가 진정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새벽 6시경 바이낸스가 FTX 인수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모든 기대가 물거품 됐다.

다시 정리하면 암호화폐 거래소의 고질병인 레버리지 투자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를 키운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다. FTX 거래소는 샘뱅크먼프리드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로 FTT 토큰을 발행하는 주체다. 샘뱅크먼프리드는 2017년 1월에 알라메다 리서치라는 암호화폐 투자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후 알라메다 리서치 투자금을 이용해 2019년 엔티가 바부다 제도에 FTX 거래소를 설립했다. 당시 FTX 자체 토큰인 FTT는 1.7달러에 발행됐다.
FTX 거래소는 FTT 토큰을 찍어서 모회사인 알라메다로 대출하고 알라메다는 FTX 거래소로부터 대출받은 FTT 토큰을 통해 달러 담보 대출을 받았다. 이후 알라메다는 대출받은 달러를 FTX 거래소로 재입금시켜 FTT 토큰을 다시 매수했다. 이 결과 FTT 토큰 가격이 급등하면서 버블이 형성됐다. 알라메다는 대차대조표에 또 이같은 FTT 상승분을 수익으로 표기해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복된 갭투자로 인해 레버리지가 증가하는 악순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유동성 리스크를 키운 셈"이라며 "바이낸스의 인수 번복은 FTX 파산 시 루나 사태보다 더 큰 파급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코인 시장에서의 뱅크런은 비단 이번 사태 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까지 급락하면서 가상화폐 시장 전반에 신뢰가 붕괴하자 170만 명의 가입자로부터 118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예치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대출해 온 셀시어스 네트워크(Celsius Network)에서 뱅크런이 터졌다.
예금자에게 14%에서 19%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해 자산을 예치하고는 그보다 높은 이자를 받고 앵커(Anchor)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에 대출하는 사업 모델로 수익을 올리는 모델이다 보니 유동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의 해소와 예금자의 신뢰 유지가 필수 불가결하다"며 은행을 인가하고 지불준비금 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자본적정성을 감시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