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본 세상]
“이지적”이 무슨 뜻?… 한자어 모르고 배척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금일 오후요? 금요일 오후는 너무 늦지 않나요?”

서울 K 대학 김모 씨(21)가 얼마 전 수업 조별과제 회의 중에 들은 말이다. 김씨가 말한 “금일(今日)”을 다른 조원이 “금요일(金曜日)”의 줄임말로 착각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김씨는 “오늘”로 정정해 다시 전달했다.

‘MZ세대의 문해력(리터러시·literacy) 저하’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해력은 글자나 텍스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역량이다. 한 젊은 방송사 기자는 뉴스에서 “무운을 빈다”를 운이 없기를 빈다고 잘못 해석해 혼선을 빚었다.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9연패를 했다”라는 뉴스에 대해 적지 않은 네티즌은 “왜 이겼는데 ‘연패’라 하느냐”라는 댓글을 올렸다.

금일, 무운, 연패…

울산시 소재 H사에 근무하는 이모 씨(52)는 “회사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하거나 공적인 일을 진행할 때 이들이 단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은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몇몇 젊은이도 “20대가 기성세대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라고 말한다. “신문, 잡지, 책 같은 인쇄 매체를 잘 읽지 않고 대신 스마트폰과 영상물 시청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기도 소재 K 대학 재학생 서모 씨(21)는 “우리 또래가 이전 세대보다 글에 대한 이해력이 낮다고 생각한다. 평소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접하고 숏폼 콘텐츠 같은 동영상이나 짧은 글에 익숙하다. 문해력을 키울 기회가 별로 없다”라고 했다.

반면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 K 대학 재학생 이모 씨(22)는 “기성세대가 책으로 문해력을 키웠다면 MZ세대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문해력을 쌓을 기회가 충분히 있다. 결과적으로 기성세대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씨는 한자(漢字)에서 유래한 단어에 국한해선 MZ세대의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EBS TV ‘당신의 문해력’ 프로그램의 문해력 테스트를 활용해 20대 10명과 40~50대 10명의 문해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10점 만점에 20대는 평균 8.8점, 40~50대는 평균 7.8점을 기록했다. 표본이 적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결과가 될 수는 없지만, 이 수치만 놓고 보면 M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문해력이 오히려 다소 높다고 할 수 있다.

“20대에는 '맥락맹' 있어”

그러나 이 조사에서 20대의 문해력 편차는 5로, 40~50대의 편차(3)보다 훨씬 컸다. 문해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20대도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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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세대의 문해력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한다./ 사진=flickr

조사에 응한 K 대학 재학생 유모 씨(21)의 문해력은 평균 이하인 6이었다. 유씨와의 일문일답이다.

-평소 본인과 20대의 문해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주변에 고도의 문해력을 가진 친구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문해력에 문제가 있지만, 일상 속에서 보면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는 ‘맥락맹’이 있는 것 같다. 기성세대 중에는 그렇게 낮은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MZ세대는 평균적으로 기성세대보다 문해력이 높지만 같은 세대 내 문해력 편차가 크다’라는 테스트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성세대는 신문이나 책 같은 전통적 미디어를 통해 문해력을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문해력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PC를 기능적으로 잘 다루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도 포함한다. 그렇다 보니 기성세대는 이 디지털 분야에서 약점을 보인 것으로 생각한다.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사교육이나 주변 환경의 차이로 인해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국어 어휘 잘 몰라도 지장 없어”

조사 대상자인 서울 D 대학 재학생 전모 씨(22)는 “우리 세대는 대체로 문해력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한자에서 유래한 모국어 어휘를 잘 몰라도 SNS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취업을 할 때도 국어 실력보단 영어 실력이 당락에 더 영향을 준다”라고 덧붙였다.

테스트와 질의응답 과정에서 조사대상 20대 중 일부는 “이지적(理智的)” “가제(假題)”라는 단어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 S 대학 재학생 이모 씨(23)는 “‘MZ세대는 문해력이 낮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한문 교육이 줄어드는 대신 디지털 미디어 접촉이 늘고 영어 활용이 빈번해졌다.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K 대학 재학생 김모 씨(여·21)는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커뮤니티 언어가 달라 MZ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져 보이는 것 같다. 또 문해력이 낮아 보이는 댓글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자인 전주시 소재 H사 직원 조모 씨(55)는 “20대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 외에는 관심이 적다. 여러 일을 겪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해력도 자연스레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어 트렌드 달라진다?

조사에 응한 20대는 특정한 문장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한자에서 유래한 특정한 단어를 어려워하고 꺼리는 경향성을 보였다.

서울 C 대학 재학생 이모 씨(23)는 “한자어가 국어 단어의 6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한자어를 모르면 상대방의 글과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다만, 이런 어휘를 몰라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몇몇 학생은 “현재의 10~20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면 상당수 문어체 한자어 어휘를 일상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한국어의 트렌드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서울 C 대학은 학생들에게 한자 자격증 취득을 졸업 요건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C 대학 총학생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 대학 재학생의 89.9%는 이 요건의 폐지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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