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노후 장비 범람, 검사도 날림
20시간 실내 교육 이수하면 운전
국내 사고·사망, OECD 가장 높아
국토부, 산하기관·민간 책임 전가

광주 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몰 참사는 건설 현장의 인재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중장비와 무거운 자재는 언제든 현장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비록 이번 사고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건설 현장엔 또 다른 '지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데 쓰이는 타워크레인이다. 특히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 타워크레인에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3t 미만의 소형 타워크레인은 조종사가 타지 않고 밑에서 리모콘으로 조종한다. 제대로 운영한다면 인명피해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이란 미명 하에 조악한 중국산이나 외국에선 단종된 낡은 장비가 대거 수입됐다.

검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서류 심사로 통과되기 일쑤다.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중장비인데 20시간 실내 교육만 받으면 조종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불법 개조된 부실 장비가 전국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운행되고 있다. '안전사고의 복마전'이 된 소형 타워크레인의 실상을 여성경제신문이 6회에 걸쳐 파헤친다.
[편집자 주]

①안전사고 얼룩진 건설 현장 복병
②마구잡이 구조변경···갈 곳 잃은 안전
③돈벌이 급급 건설기계안전관리원
④'국산 타워의 함정'···국토부 인증 청우T&G 
⑤현장의 안전불감증···허술한 교육
⑥산하기관·민간 책임전가 급급한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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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7일 오후 2시 35분 부산광역시 중구 공사 현장.

'쿵'하는 소리와 함께 노동자 A씨가 쓰러졌다. 소형 타워크레인 기사였던 A씨는 크레인의 쇠줄이 끊어지면서 떨어진 고리에 맞아 머리를 크게 다치고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즉각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정부는 당초 사고조사 보고서에 안전장치 오작동을 지적했다. 크레인의 쇠줄은 과도한 무게가 걸리면 작동을 멈추게 돼있는데 이 장치가 고장난 걸로 봤다. 그러나 사고 당시 크레인에는 아무 자재도 걸려 있지 않았고 무게 130㎏ 정도인 쇠고리만 달려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정부는 안전장치 고장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도 조종사 과실을 집중 부각했다. 소형 타워크레인은 사람이 타지 않고 밑에서 조이스틱으로 조종하는데 사고 당시 A씨가 조이스틱을 들지 않은 채 크레인 아래로 걸어들어갔다는 이유에서였다.

2021년 6월 17일 오후 2시 35분 부산광역시 중구 공사 현장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고리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사고 보고서
2021년 6월 17일 오후 2시 35분 부산광역시 중구 공사 현장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고리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사고 보고서

당시 A씨는 크레인 아래에 있는 철근에 천막을 씌우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아무 작업도 하지 않던 크레인의 고리가 떨어져 일어난 사고인데도 조종사 책임을 부각하자 유족은 분노했다.

A씨 누나는 사고 당시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사고가 나고 벌써 몇 시간이 흘렀지만 그 어떤 책임자도 나오지 않는다"며 "가족을 잃었는데 원래 이런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자 새로운 사고 원인이 속속 밝혀졌다. 사고가 난 크레인의 제작 연도를 확인하자 1995년 제작된 노후 기종으로 드러났다. 해당 기종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단종돼 부품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계식이었던 크레인에 전기 판넬을 장착했다는 구실로 2003년 새로 제작된 기종으로 등록됐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사고를 낸 크레인과 같은 노후 기종인데 제작 일자가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천차만별로 등록돼 있다. 이런 식으로 2016년 일괄 등록된 크레인만 29대나 됐다. 

26년이나 된 노후 크레인인데 부품도 자주 교체하지 않다 보니 고리를 매달고 있었던 와이어로프가 심하게 부식됐다. 사고를 낸 크레인의 와이어로프를 보면 녹이 심하게 슨 데다 지속적으로 무거운 하중을 받아 육안으로 봐도 와이어가 벌어진 게 확인될 정도였다.

와이어로프를 보면 녹이 심하게 슨 데다 지속적으로 무거운 하중을 받아 육안으로 봐도 와이어가 벌어진 게 확인될 정도였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사고 보고서
와이어로프를 보면 녹이 심하게 슨 데다 지속적으로 무거운 하중을 받아 육안으로 봐도 와이어가 벌어진 게 확인될 정도였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사고 보고서

한상길 한국 타워크레인 임대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와이어가 피로 과중으로 뒤틀리면서 끊어졌는데 지속적으로 힘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당 기종은 두 와이어에 각 1t씩 무게가 걸린다. 조금만 무게가 넘어도 기체가 멈춰야 하는데 사고 보고서를 보면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구조 검토를 엉터리로 하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A씨의 누나는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책임자 처벌이 있기까지 지켜보자 다짐했다"며 "실제로 안전점검은 한 건지, 책상에서 전화로만 점검한 건 아닌지 그 답변도 꼭 받겠다"고 말했다.

사고는 부산에서만 난 게 아니다. 지난해에만 소형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사고가 △서울 △하남 △인천 △속초 등 곳곳에서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에서 소형 타워크레인이 대거 등록된 건 2016년 국토교통부로 소관부처가 이관된 뒤 시작된 타워크레인 등록 장려 정책에서 비롯됐다. 고용노동부 소관 당시에는 소형 타워크레인이 신고제로 서류나 번호판 없이 간헐적으로 운영됐다. 그러다 2016년 강호인 장관 때 국토부 소형 타워크레인 신규 등록 지원 방안에 따라 우후죽순 등록되기 시작했다.

정부 등록 정책으로 2015년 271대였던 소형 타워크레인은 2016년 들어 1332대로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1800대까지 증가했다. /이용호 의원실
정부 등록 정책으로 2015년 271대였던 소형 타워크레인은 2016년 들어 1332대로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1800대까지 증가했다. /이용호 의원실

마침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자 사람이 타지 않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소형 타워크레인이 첨단 장비로 인식돼 정부가 도입을 적극 권장했다. 

심지어 등록에 필요한 서류가 없으면 대한건설기계협회 ‘등록지원위원회’에서 등록지원필증을 만들어 발급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제원표가 없어도 건설기계 검사총괄인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이 각종 자료와 장비 대조를 통해 제원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등록 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정부가 없는 서류를 만들다 보니 연식도 중구난방 주먹구구식으로 등록됐다. 앞선 사고 타워크레인이 단적인 예다. 실제론 1995년 제작됐는데도  2003년 제작된 것으로 등록됐다.

정부 등록 정책으로 2015년 271대였던 소형타워크레인은 2016년 들어 1332대로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1800대까지 늘었다. 국토교통부 건설기계 현황에 따르면 2021년 3월까지 등록된 소형타워크레인은 1732대로 전체 타워크레인 중 30%를 차지한다.

정부가 소형 타워크레인 보급 장려 정책을 펴니 중국과 유럽 등지에서 낡은 싸구려 장비가 마구 수입돼 첨단 장비로 둔갑했다. 이런 장비가 전국의 건설 현장으로 보급됐으니 사고가 급증한 건 당연했다.

앞선 사고가 증명하듯 외국과 비교할 때도 한국의 소형타워크레인 사고·사망 건수는 많다./ 한국크레인협회, 안전보건공단
앞선 사고가 증명하듯 외국과 비교할 때도 한국의 소형타워크레인 사고·사망 건수는 많다./ 한국크레인협회, 안전보건공단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소형 타워크레인 사고·사망 건수는 월등히 많다. 2021년 4~6월 발생한 사고는 총 10건으로 단기간 내 가장 높다. 국내 소형 타워크레인 사망자수는 2014~2021년 합산 15명이다. 특히 정부 발 도입이 이뤄진 2016년부터 집계된 사망자만 12명이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만 해도 한국 실정과 현격히 차이가 난다. 한국크레인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독일은 사고 4건, 영국은 2건, 미국은 0건이다. 사망은 모든 사례에서 0에 수렴한다. 이 같은 결과에 한국은 소형 타워크레인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장비가 부실하면 검사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 역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등록을 엉터리로 했으면 검사라도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타워크레인 검사는 번거로워 민간검사업체 사이에선 기피한다는 후문이다.

장비가 부실하면 검사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 역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여성경제신문
장비가 부실하면 검사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 역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여성경제신문

타워크레인 검사는 국토교통부 산하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이 맡아 민간검사업체에 대행을 맡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사고의 '최후 보루'인 검사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자료에 따르면, 검사 수수료 수입은 △2016년 약 113억원 △2017년 약 117억원 △2018년 약 118억원으로 확인된다. 이에 대해 안전관리원 측은 "해당 액수는 26~27개 건설기계 전체 검사 수수료 수입이며 이 가운데 소형 타워크레인 비중은 4%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2019년 11월 이후 안전관리원은 총괄 업무만 맡고 실제 검사는 민간 대행업체가 해왔기 때문에 소형 타워크레인 검사 수입은 없는 상태"라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사고가 날 때마다 노후하거나 제작 결함이 있는 타워크레인을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2021년 2월에도 보도자료를 내고 등록말소 및 시정조치(리콜)을 내렸다고 고시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2021년 2월 보도자료에서 등록 말소 기종으로 명시된 타워가 6월에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2021년 6월 3일 서울 도봉구 소재 병원 신축 건설 현장에서 등록 말소가 이뤄졌어야 할 'CCTL 130'  소형 타워크레인이 사고를 일으켜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와이어로프가 끊어져 자재 운반용 고리가 건설현장 중앙으로 떨어졌다. 당시 등록말소가 빠르게 이뤄졌어야 할 기종이 현장에서 가동되는 모습에 국토부는 질타를 받았다.

향후 밝혀진 국토부 산하기관 정기검사에서 사고 타워 검사일이 2021년 2월 25일로 확인돼 의혹은 재차 가중됐다. 같은 해 2월 11일 해당 기종을 등록말소 조치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온 뒤에도 정기검사에선 '적합'으로 판정된 것이다. 유상덕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정부에 대해 "사람이 죽은 문제"라며 "돈 한 푼에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측은 "우리는 등록 말소 통보만 할 뿐 실제 말소 조치는 각 등록관청 소관이라 말소 통보와 실제 퇴출 조치 사이에 시차가 존재할 수 있다"며 "도봉구에서 사고를 낸 장비도 말소 등록은 됐으나 당시 사용 중이던 장비여서 즉각 퇴출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2021년 6월 3일 서울 도봉구 소재 병원 신축 건설 현장에서 등록 말소가 이뤄졌어야 할 'CCTL 130'  소형 타워크레인이 사고를 일으켜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2021년 6월 3일 서울 도봉구 소재 병원 신축 건설 현장에서 등록 말소가 이뤄졌어야 할 'CCTL 130'  소형 타워크레인이 사고를 일으켜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직무유기 논란에 휩싸인 국토부는 노동계 및 관련 업계와 함께 합동 회의도 주재했다. 그러나 정작 논의해야 할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오히려 기존 소형 타워크레인 세부규격을 10층 이하로 개정하는 바람에 기준에 맞지 않는 장비가 생겨 업계가 반발했다. 그러자 국토부는 '지브 길이나 하중 센서를 조정해 장비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만들어 애초 소형-대형으로 이원화돼있던 분류 체계를 소형-소형일반-대형의 3단계 구조로 만드는 혼선만 빚었다.

그러나 세부규격이 건설 현장의 상황과 동떨어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실제 법정 규격 내 소형 타워는 높이가 낮아 신규 도입된 사례나 운영 사례가 드물다. 

낡고 결함 투성이인 소형 타워크레인은 지금도 전국 건설 현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업계는 국토부가 결함 있는 타워크레인을 색출해 시급히 퇴출시키지 않는다면 사고는 더욱 빈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상덕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소형 타워크레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나 마찬가지"라며 "인명 피해가 더 이상 나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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