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야적장에 불법 개조 크레인 수두룩
인명사고, 졸속검사, 수수료 장사 악순환
국토부-안전관리원 유착 관계 불만 고조

광주 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몰 참사는 건설 현장의 인재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중장비와 무거운 자재는 언제든 현장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비록 이번 사고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건설 현장엔 또 다른 '지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데 쓰이는 타워크레인이다. 특히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 타워크레인에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3t 미만의 소형 타워크레인은 조종사가 타지 않고 밑에서 리모콘으로 조종한다. 제대로 운영한다면 인명피해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이란 미명 하에 조악한 중국산이나 외국에선 단종된 낡은 장비가 대거 수입됐다.

검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서류 심사로 통과되기 일쑤다.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중장비인데 20시간 실내 교육만 받으면 조종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불법 개조된 부실 장비가 전국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운행되고 있다. '안전사고의 복마전'이 된 소형 타워크레인의 실상을 여성경제신문이 6회에 걸쳐 파헤친다.
[편집자 주]

①안전사고 얼룩진 건설 현장 복병
②마구잡이 구조변경···갈 곳 잃은 안전
③검사·인증 장사 여념 없는 건설기계안전관리원
④'국산 타워의 함정'···국토부 인증 청우T&G 
⑤현장의 안전불감증···허술한 교육 제도
⑥산하기관·민간에 책임 전가 급급한 국토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야적장에서 재조립을 기다리는 소형 타워크레인 장비들. 불법개조 크레인 CCTL140 시리즈뿐 아니라 녹이 슬고 파손된 장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상헌 기자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야적장에서 재조립을 기다리는 소형 타워크레인 장비들. 불법개조 크레인 CCTL140 시리즈뿐 아니라 녹이 슬고 파손된 장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상헌 기자

"뭐 이렇게 있다 다시 검사받고 나가지요"

지난 1월 중순 찾은 경기도 파주의 타워크레인 야적장.

건설 현장에서 사용된 후 해체돼 재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소형 타워크레인이 즐비했다. 그런데 안전검사를 통과한 정상적인 장비들과 함께 진작에 퇴출 됐어야 할 등록말소 장비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CCTL130-L43A, CCTL140-43A 등 이미 등록취소된 불법개조 크레인과 시정조치를 받은 CCTL80A, CCTL80B, CCTL110, CCTL120 시리즈가 여기저기 뒤엉켜 있었다. 사고가 나서 쓸 수 없게 된 장비는 별도 장소에 모아 폐기해야 한다. 그런데 정상 크레인의 조립·설치가 이뤄지는 야적장에 버젓이 들어와 재출격을 기다렸다.

이날 야적장 한 쪽에서 조립 작업을 하던 건설업계 한 직원은 불법 개조 크레인이 왜 방치돼 있느냐는 질문에 "뭐 이렇게 있다가 다시 검사 받고 나가는 거죠"라고 답했다. 퇴출돼야 할 장비가 야적장에서 방치돼 있다가 검사를 받고 다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게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불법개조 크레인이라 해도 저마다 번호표가 붙어 있어 불량품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린 관계자 색출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검사 대행업체에 대한 업무정지면 충분하다"면서 책임자 처벌에 손을 놓고 있다. 이렇다보니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으로부터 고발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측은 "등록 말소가 됐다고 모두 폐기되는 건 아니다"라며 "등록 말소된 장비라도 적법한 안전 보완 조치와 검사를 받으면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경기도 파주시 소형 타워크레인 야적장에서 발견된 등록취소된 불법개조 크레인 CCTL140 시리즈와 사용설명서 /여성경제신문DB
경기도 파주시 소형 타워크레인 야적장에서 발견된 등록취소된 불법개조 크레인 CCTL140 시리즈와 사용설명서 /여성경제신문DB

야적장 곳곳 방치된 불법개조 크레인
부실검사 중심에 건설기계안전관리원

모든 건설기계는 현장에 투입되기 전 안전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형 타워크레인도 정기 검사 이후 6개월마다 생애주기별 검사를 받는다. 관리감독 총괄기관은 건설기계안전관리원이다.  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1997년 건설기계 안전검사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2008년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으로 타워크레인이 건설기계로 분류되면서 타워크레인 검사 대행을 시작했다. 민간 검사업체 7곳에 대행을 맡기는 방식으로 검사를 수행한다. 특히 2014년 3t 미만 소형 타워크레인 일괄등록을 추진하면서 제원표조차 없는 중국산 타워크레인 제원표를 만들어 등록시키면서 관련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는 지적을 받아온 단체다.

여성경제신문은 앞서 [죽음의 소형 타워크레인②] 마구잡이 구조변경···갈 곳 잃은 안전 편을 통해 중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입된 낡은 싸구려 장비를 첨단 장비로 둔갑시킨 정황을 보도했다. 정부가 없는 서류를 만들다 보니 연식도 중구난방 주먹구구식으로 등록됐다.

또 이와 관련 정성모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팀장도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등록 지원 당시 기존에 운용했던 타워크레인은 형식 신고·승인과 확인 검사를 다 한 것으로 갈음했다"며 무차별 승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졸속 등록·검사 책임 있는 기관에
국토부는 왜 전수조사 또 맡겼나?

더 큰 문제는 인명사고가 빈발하는 데도 검사기관을 바꾸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편법·불법 구조변경한 타워크레인이 건설 현장을 누비도록 한 책임이 있는 건설기계안전관리원에 또 다시 소형 타워크레인 전수조사를 맡겼다. 

악순환은 국토부가 2014년 7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소형 타워크레인 등록을 의무화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국토부가 건설기계안전관리원에 전달한 '3t 미만 타워크레인 신규등록 지원방안'에 따라 불법개조 타워크레인 제원표가 만들어지고, 이를 근거로 소형 타워크레인을 마구잡이 등록했다. 그런데 검사를 대충하고 합격점을 내줘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불법개조로 장비 결함에 따른 인명 사고 가능성에 대해 소형 타워크레인 한 조종사는 "같은 합격품인데 실제 조종을 해보면 기계마다 상태가 천차만별이다"며 "기계결함으로 인한 안전 사고는 사실상 '복불복'으로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인명사고와 함께 검사 부실 소동이 일자 국토부는 2020년 11월 검사대행을 부실하게 한 검사 대행업체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구조변경된 소형 타워크레인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국토부 발표가 나온 시점은 이보다 늦은 2021년 10월 27일이었다. 대행업체를 처벌하는 땜질식 처방에도 사고가 매년 터지는 형국이다. 

현장 근로자들도 설계도와 실물이 다른 구조변경 소형 타워크레인이 버젓이 운행됐던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역삼동에서 오피스 건물을 건축 중인 한 소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야적장에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정기검사에선 어떻게 '적합'으로 판정된 것인지 검찰수사를 통한다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장비가 부실하면 검사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 역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여성경제신문
장비가 부실하면 검사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 역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여성경제신문

졸속검사와 수수료 챙기기 악순환 배경엔 국토부와 건설기계안전원 간 유착관계가 있었다. 공직유관단체인 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안전검사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정부 이해관계가 얽힌 어떤 집단과도 유대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

하지만 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국토부 소속 공무원을 이사로 두고 있다. 현재 김태곤 전 국토부 과장이 원장으로, 장영수 대한건설협회 전 회장과 건설경제연구소 원장이 비상임이사로 등재돼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유착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감독기관이 사고 원인을 은닉해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동훈 국토부 건설산업과 사무관은 "이미 업무정지도 되고 경고를 받은 업체인데 자기 목숨을 걸고서 그렇게까지 서로 봐주기를 한다는 것은 시스템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전경. /여성경제신문DB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전경. /여성경제신문DB

국토부 전문성 강화 명분 수수료만 인상
현장선 "도장만 찍어주고 돈 받는 구조"
이젠 크레인 전문가가 사고조사 나서야 

건설업계도 볼멘 목소리다. 국토부는 2018년 검사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시행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2008년 이후 10년간 동결됐던 타워크레인 검사 수수료를 인상한 바 있다. 

타워크레인은 적정용량과 정기·수시 등 검사유형에 따라 검사비가 다른데 이 과정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기본 검사 수수료는 16만원으로 통일됐다. 장비 수명 10년 도래시 안전성검사 비용은 150만원으로 급증했다. 15년이 되면 비파괴검사비 400만원, 20년 도래 시 정밀진단 검사비 760만원을 내도록 20t 미만 대형크레인 기준에 맞춰 책정됐다. 임대사업자들이 "인건비도 맞추기 어렵다"고 볼멘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건설 현장에서도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상길 한국 타워크레인 임대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검사 대행업체에 돈벌이 창고를 따로 만들어준 것밖에 안된다"며 "검사 건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도장만 찍어주고 돈 받는 졸속 검사 관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희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감시위원회 위원장은 "크레인에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찾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부 대책위원회가 열려도 비전문가들이 모여 기계 결함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도면만 고쳐 현장에 내보내는 탁상행정이 반복됐다"며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앞으로는 전문가들의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은 소형타워크레인 문제를 시작으로 산업재해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전국의 소형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정밀 진단하고자 합니다. 타워크레인 안전은 건설 노동자 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아래 링크 질문에 정보를 기입해주시면 본지 연재시리즈는 물론 타워크레인 관련 뉴스를 신속하게 이메일 등으로 보내 드립니다. 타워크레인뿐 아니라 건설현장 안전 문제 등에 대한 제보나 사건 · 사고 · 파업 · 정보 등을 '제보 내용'에 적어주세요. 관련 정보를 취합 보도해, 타워크레인 안전사고가 줄어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래는 정보를 기입할 수 있는 링크입니다. 많은 동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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