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자 대부분 신용불량자·사업실패로 발 들여
월세 20만~30만원, 은행거래 안돼 현금으로 지급
자원봉사자 "이 곳이 그들에겐 인생 마지막 거처"
공공개발 땐 선입주권, 민간개발 땐 길거리로
동자동 쪽방촌 현장./ 팩트경제신문
5평 남짓 월세 25만원 안팎 작은 방. 거주자는 대부분 신용불량자다. 무슨 고난을 겪었을까. 썩어 문드러진 마음을 소주와 담배연기로 치유하는 그들, 동자동 쪽방촌 사람을 팩트경제신문이 만났다.
26일 자정이 다 돼서야 찾아간 동자동 밤공기는 담배와 술냄새에 쩌들어 있었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음식물, 각종 쓰레기에서 풍기는 악취까지 더해 말그대로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됐다.
크게 금이 간 벽이 눈에 띄는 낡은 건물로 발을 옮겼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만한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한 노인이 보였다.

한밤 중 낯선 사람 방문에 노인은 "이 밤 중에 누구냐"고 물었다. 기자라는 소개에 경계심을 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겪은 외로움 때문인지 친손주를 만난 듯, 기자를 보고는 주름진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노인이 머무는 방은 엉망진창이었다. 날파리가 꼬인 밥솥에 뜯어진 장판. 세탁을 얼마나 못 했는지 찌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노인은 이곳에서 10년 넘는 세월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건설 장비 관련 일을 하다가 말아먹고 대구 쪽방촌, 서울역 노상을 거쳐 이곳에 정착했다. 가족도 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작고 허름한 방 월세는 단돈 27만원. 매월 현금으로 집주인에게 직접 가져다 준다고 한다. 노인은 "몸이 아파서 일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라 주거지원비 나오는 것으로 월세를 해결한다"며 본인이 살고 있는 지금 방이 근처에서 가장 큰 방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사람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라 계좌이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월세도 현금으로만 주인에게 직접 주든지, 관리자에게 넘긴다.
생활비를 어떻게 구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매월 24만 5000원을 나라에서 받는다"고 했다. 노인은 이마저도 "나에겐 큰 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 가서 반찬 사고 쌀도 조금씩 가져올 수 있다. 소주 사고 담배도 사고... 결국, 월세 빼면 25만원 남짓으로 한 달 한 달 살아나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게 내 삶"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방을 나와 건물을 둘러봤다. 공용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등을 곧게 펴지도 못하는 공간. 설겆이도 흐르는 물로 하지 못한다. 언제 받아놓은 지 알 수 없는 물로 다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총 10층인 이 건물은 한 층당 3~4개 방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옆 건물로 발을 옮겼다. 이 곳에 사는 또 다른 노인은 몸이 불편해 보였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리웠는지 대뜸 문을 열어주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노인은 냉장고에 고이 담아놓은 요구르트 음료 하나를 건네며 "줄 게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차마 받을 수 없었다.
노인은 통장을 보고 있었다. 내역을 보니 생계지원금과 주거지원금은 다 빠져나가고 고작 1만5000원이 남았다. 다른 통장은 잔고가 0이 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했다.
하반신 마비가 시작됐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까지 겹쳤는데, 병원에서 장애인 판정을 안해줬다고 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니 장애인 판정을 해 줄 수 없다고 한다"며 "기본 보험 외로 돈을 더 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그냥 이러고 산다"고 했다.
앞서 만난 노인과 상황은 비슷했다. 왕년에 사업을 하면서 잘나갔지만 IMF 이후 생계 수단을 잃고 이곳 저곳을 전전긍긍하다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신용불량자라 현금으로 15만원가량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벼랑 끝 마지막 거처 "호스피스 병동같다"
거주자와 헤어지고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 봉사단체를 찾았다. 그는 이곳 사람들을 4년 넘게 돌보고 있었는데 "호스피스 병동같다"며 동자동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겨울이 되면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도 많다고 했다. 그는 "여기 사람 대부분 평범하게 살다 사업실패, 과도한 대출로 인한 채무,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이 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라며 "마음의 깊은 상처가 육신의 병으로까지 이어진 사람으로 가득하다. 쪽방촌은 갈 곳 없고 희망없는 이들에게는 최후의 보루, 마지막 거처"라고 설명했다.
그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쪽방촌에 누워 인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동자동은 현재 공공개발·민간개발을 놓고 대립 중이다. 월세를 내며 생활하는 이들은 공공개발이 되면 선입주권을 갖게 된다.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일이다. 그러나 민간개발이 되면, 이들이 갈 곳은 길거리 뿐이다.
영상취재 : 옥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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