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낭만밖엔 난 몰라]
행복을 지켜줄 대한민국 헌법, 책 한 권,
그리고 치맥을 함께 나누는 일상의 기쁨

아침에 눈을 뜨고 의례 습관처럼 뉴스를 찾아보니, 간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미국의 뉴스 방송 CNN에서 신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준비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는 뉴스 진행자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립니다. 다음으로 미국 LA 해안 지역의 무섭게 불탄 집 앞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가족들의 장면들이 클로즈업되어 보입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교전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간에 휴전협정이 발효되었고,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정치 비자금 스캔들 소식이 터져 국민들이 분노한다는 뉴스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의 전쟁연구소에서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1만2000명 대부분이 다가올 봄에 전멸할 것이란 소식입니다.
이 외에도 지구상에서 우리가 모르는 전쟁과 폭력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가차 없이 냉혹합니다. 폭력은 가까운데 법과 정의는 한참 멀어서 잔혹하기만 합니다. 81억 인구가 숨 쉬는 태양계의 '지구'라는 별은 놀라운 서사와 두려운 사건·사고가 이산화탄소와 함께 매일매일 발생하는 희한한 별임은 틀림없습니다.
다시 대한민국 뉴스로 채널을 돌리니, 구속영장이 발부된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합니다. 국가적으로 불행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갈 곳 잃어 울렁거리는 마음을 잡을 겸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는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나는 뭐로 마음을 다잡아야 하나?' 질문이 새로 생겼습니다. 무신론자이니 성경이나 불경 필사는 좀 그렇고··· 뭘 해야 불쾌한 이 기분을 정제할 수 있을까? 막막한 기분으로 도서관 서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헌법을 다루는 이 책의 제목이 특이하게 감성적이라 책장을 넘겨 봅니다. 이 책을 완독하려고 선택한 이유는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은 '헌법'이라는 저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헌법이 내 행복을 지켜줄 만큼 따뜻하다고?' 작가가 우리나라 최고의 헌법 전문 학자라고 해도 현직 대통령을 구속한 무서운 헌법이 나를 위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문장은 믿기도 어렵고 살면서 처음 들어보기 때문입니다.

헌법이 내 행복을 지켜 준다니, 왜 그런지 알고 싶은 마음에 표지를 넘기니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과 2항이 나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문장을 읽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여러 번 읽으니, "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먹먹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절대로 기존 권력자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헌법 전문이 모진 한파와 세파에 지쳐가는 내 가슴을 뜨겁게 데웁니다.
책의 저자는 국민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구체적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국민도 민주시민의 정치적 의식을 고양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자세를 가짐으로써 주권자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대의제를 원칙으로 하더라도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만으로 그 책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국가 운영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활동을 감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국가 역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조직하고 수렴하고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지방자치를 강화해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P82. 이효원
저자는 대한민국에 '좋은' 헌법이 이미 존재한다고 합니다. 헌법 제1장 1조와 2조의 가치를 일상에 두기 위하여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 방법도 제안합니다.
'헌법적 가치라는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반 헌법적 악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황금률대로, '내가 대접받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을 평소에 실천하자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 황금률은 저의 평소의 신념과 실생활에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내 기준을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접받고 싶은 것을 사려 깊게 따져 행하고, 타인이 대접받고 싶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태도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는 가치임을 새롭게 배웁니다. 태도야말로 헌법적 가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는 바로 오늘입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소상공인의 한숨과 실업자들의 채무는 깊어져 갑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가는 대한민국의 대외 신용도는 떨어지고, 그나마 동남아 여행지의 식당과 시장에서 잘 받아 주던 대한민국 원화를 받아 주지 않아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미국 성조기를 시위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의 관세를 올릴 겁니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아무리 올라가도 미국은 책임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우울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심신이 부패해 가겠지요. 아무것도 안 하면 당연히 근육량은 줄 것이고, 심폐기능과 혈액순환이 나빠져 신진대사가 줄어들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은 위태로워지겠지요.
헌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내가, 이 어렵고 매서운 시절에 TV 뉴스만 보며 가만있으면 안 되겠지요.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나갑니다. 주말에 헌법 수호를 위한 체력을 기를 겸 만 보 걷기 산책을 하고, 공원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카톡으로 가족과 주변 친지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다음 주 말 동네 치킨집에 모여 '치맥'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탄핵의 시대라 한들 우리에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헌법이 있고, 내가 강요할 수 없는 인권을 가진 이웃들과 희망의 치맥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고귀한 것과 평범한 것, 아름다운 것과 일상적인 것들 모두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엘리트 권력자들을 세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한 편으로는 오늘의 작지만 확실한 기쁨들을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삶은 저절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운명은 우리가 삶을 일구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와 제2조의 문장들을 심호흡에 맞추어 읽습니다. 내가 투표하여 선출된 권력자와 선량들이 헌법의 가치와 황금률을 지키는지 감시하기 위해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치맥에 생맥주를 마시며 고민합니다.
비록 감시할 것들과 고쳐야 할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가족과 이웃을 지킬 헌법적 가치와 꿈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끝까지 살아낼 겁니다. 고맙게도 이 글을 읽어 주신 당신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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