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김조이, ‘경성여자청년동맹’ 창립 발기인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김조이-유지환作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김조이-유지환作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김조이 金祚伊 (1904~미상)

운동계열 : 국내 항일   |   훈격(서훈년도) : 건국포장(2008)

김조이 선생은 1925년 1월 허정숙, 주세죽, 김필순 등과 함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했다. 경성여자청년동맹은 ‘여성해방운동’을 지행했던 독립운동단체로 여성해방 서적 연구·토론, 여성 노동자 위안 음악회 개최 등의 사업을 펼쳤고 무산아동학원 설립, 여성을 위한 문고 설치, 학술강좌 개최 등을 계획했다.

같은 해 2월에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이 되어 활동했는데,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가 일본 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이에 항의해 일어난 ‘적기 시위 사건’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1925년 4월에 창립된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위원 후보로 활동했으며, 1930년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되었으나 소재 불분명으로 기소 중지되었다. 1931년 8월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 인천 대표로 참석했고, 12월 조선부녀총동맹에 가입했다. 이듬해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부녀총동맹 대의원으로 참석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월 중순경 서울에서 강제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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