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김효숙,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 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외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김효숙 金孝淑 (1915~2003)
운동계열 : 3∙1운동 | 훈격(서훈년도) : 애국장(1990)
평남 용강 출신인 김효숙 선생은 1919년 부친 김붕준(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역임)을 찾아 어머니와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6년 광둥성 중산대학을 졸업하고, 동생(김정숙/애국장, 1990)과 함께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고 선전공작에 참가했다.
1937년 중일전이 일어나자 중국 남경으로 옮겨가 남기가(藍棋街)에서 한글 교사로 근무했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가입해 대일 선무공작(宣撫工作)에 참여하였으며, 1939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해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해 활동하는 한편 장사, 사천, 중경 등지에서 교포 아동 교육을 담당했다.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부회장, 그리고 다음 해 10월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피선되어 활약했다. 1944년에는 민족혁명당의 감찰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심리전 활동을 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1978년 미국에 이민을 떠난 김효숙 여사는 미주 3.1여성동지회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향년 88세 나이로 200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