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거리’의 심리학

나는 1991년 겨울에 결혼했다. 그때 나이는 스물일곱 살, 만 26세였다. 대학원을 다니다가 그해 여름 막 학사장교로 임관한 새내기 공군 소위였다. 아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나 10년 이상 연애한 동갑내기였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당연히 결혼한다는데 묵시적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 병역의 의무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빨리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결혼은 내 남자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빨랐다. 물론 대학 재학 중에 사고를 쳐서 ‘애가 애를 낳은’(?) 커플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결혼을 빨리하게 된 이유는 너무나 소박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하겠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여성들의 결혼 적령기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은 우리 나이 27살이었다. 시쳇말로 ‘여자 나이 28살이 넘어가면 x값’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엄연히 존재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전에 나는 아내와 몇 가지 서약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떤 일이 있어도 각방을 쓰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심하게 다툰 뒤라도 같은 방에서 서로 부대끼다 보면 풀리기 마련이다.
베개를 들고 휑하니 다른 방으로 가버리면 두 사람 간에 부는 시베리아성 북풍한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 방에서 한 사람은 침대 위에서 자고 한 사람은 침대 밑에서 잔다손 치더라도,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자칫 상대방의 발을 밟기라도 하면 ‘아얏!’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눈이 마주친 부부는 피식 웃으며 말없이 화해하게 마련이다.
요즘 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면서‘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 한국사회는 마스크 착용과 더불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적당한 거리가 존재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을 근접학(proxemics)이라고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만든 용어다. 각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개인적인 공간이 존재한다.
에드워드 홀은 이 개인적인 공간(personal space)을 친밀한 거리, 사적인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의 4가지로 나눈다. 먼저 ‘친밀한 거리’는 15~45cm 사이이다. 부부나 연인은 물론이고 매우 가까운 친구나 친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려동물도 친밀한 거리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인 나의 조카는 요즘 여학생답게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한 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약간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남성들의 신체적 언어적 접촉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고모부인 나와는 매우 친하게 서로 손을 잡거나 포옹도 하고, 장난을 치며 놀아도 되는 친밀한 거리를 공유한다.
친밀한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어쩔 수없이 친밀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버스나 지하철의 승객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짧은 순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의 승객이나, 오랜 시간 이동하는 비행기 승객도 마찬가지다. 나이트클럽에 모여 낯선 사람과 몸을 맞대고 부비부비 춤을 추는 젊은 청춘 남녀의 모습도 여기에 포함된다.
두 번째로, ‘사적인 거리’는 46~122cm 사이이다. 일반적인 사교모임이나 친구들끼리의 모임, 회사에서의 공식적인 모임을 가질 때 타인과의 사이에 두는 거리를 말한다. 아주 오래 전의 한 직장에서 내 직속상사는 서로 대화를 할 때 내 코앞까지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걸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정한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다지 존경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나는 그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는 나와 사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도, 친밀한 거리로 불쑥 치고들 어왔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그를 피하기 일쑤였다.
셋째, ‘사회적 거리’는 1.22~3.6m 사이이다. 대개 잘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과의 사이에 유지되는 거리지만, 택배 기사나 상점의 주인 등도 이에 해당한다.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교수도 여기에 포함된다. 요즘 한참 보건 당국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거리’는 3.6m 이상이다. 대중연설을 하는 사람이나 공연을 하는 배우나 가수들과 객석의 관중들 사이에서 유지하는 거리가 대표적이다. 통상 무대에 있는 사람들과 객석에 있는 관중들 사이에 신체적인 접촉은 허용되지 않는다.
예외는 있다.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출연자들이 갑자기 객석으로 내려가 악수도 하고 장미꽃송이를 나눠주기도 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관객들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 공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할 가수와 관중이 일시적이지만 친밀한 거리 속에 들어가 소통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어떠한 경우에도 각방을 쓰지 말자고 제안했을까. 부부는 마땅히 친밀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베개를 들고 딴방으로 가버리는 순간, 두 사람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급격히 멀어진다.
30cm 자 하나 정도 되는 친밀한 거리에서 3m가 넘는, 신체적 접촉은커녕 서로 볼 수도 없는 공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로 급변한다. 부부는 늘 친밀한 거리 안에서 아웅다웅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친구 사이는 부부 사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누군가의 말처럼 친구는 난로와 같아야 한다. 친구사이는 난로처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따뜻하다. 너무 가까이 가면 데이고, 너무 떨어지면 춥다. 잠시 난로 곁에 바짝 붙어서 온기를 취하다가도 이내 살짝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수 나미의 ‘빙글빙글’이라는 노래가 있다.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사람~” 이건 친구가 아닌 연인 사이의 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친구 사이가 아니다. ‘친밀한 거리’로 발전해야할 연인 사이가 그냥 일반적인 친구처럼 ‘개인적 거리’에 머물고 있다는 한탄인 것이다. 친구 사이는 나미의 노래 가사처럼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맞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견디기 힘든 존재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자유의지(free will)는 중요하다. 엘리베이터의 전원을 아낀다고 문을 닫는 스위치를 없애는 엔지니어는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문 하나도 내 맘대로 열고 닫지 못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한 심정, 통제에 대한 무력감을 결코 예사롭게 넘겨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친밀한 거리를 유지할지, 사적인 거리를 유지할지, 아니면 사회적 거리나 공적인 거리에 머물지는 오직 개개인의 자유의지로 정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반면 자유의지가 작동하지 못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요즘 사람들은 창궐한 바이러스 탓에 요양원에 계신 노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한 딸을 만나지 못하며, 군대 간 아들 면회도 맘대로 하지 못한다. 심지어 바이러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부모나 자식의 임종은 물론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여의고 영결식(永訣式), 즉 이승에서의 영원한 결별을 위한 의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대구의 한 고등학생은 평소 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적 마스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가 도리어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인 공적 마스크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서는 바람에 오히려 사회적 거리를 유지 못하는 역설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 싫든 좋든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 학교를 가지 못하는 수많은 초중고와 대학교 학생들, 지정된 예배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신실한 종교인들 등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가 동일한 입장이다.
가까운 친인척, 직장동료, 친구마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되어 버린 이 기막힌 상황이 속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특별히 사회적 거리두기의 와중에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더 고초를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한 적절한 생계 지원 대책이 마련되고, 하루 빨리 이 역병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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