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불륜의 심리학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포스터 / JTBC 제공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포스터 / JTBC 제공

원앙새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런 연유로 우리 조상들은 부부가 같이 덮고 자는 이불과 베개에 원앙을 새겨 넣기도 하고, 나무로 깎아 만든 원앙새 조각품을 침실에 두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결혼식장 내부 장식에 원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청첩장에 원앙새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암수가 늘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일부일처제의 상징인 원앙새는 정말로 성실한 배우자로 칭찬받을 자격이 있을까? 짓궂은 현대 과학자들은 우리 조상들의 이런 믿음이 타당한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원앙새의 새끼들을 대상으로 DNA 조사를 해본 것이다. 

감정 결과 다정하기로 소문난 원앙새 새끼들 중에 무려 4분의 1이 원앙새 암컷의 외도로 태어났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떨까.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문화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3-10% 가량의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의 손에 의해 자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 대학 친구 중 하나가 여러 해 전에 들려준 이야기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는 멀쩡한 친구가 은밀한 소개팅을 했다고 한다. 상대 역시 유부녀였으니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불륜 남녀의 외도 행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그냥 그만 만나기로 했어. 글쎄 그 여자 남편이 서울 모 지검의 부장검사더라고.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한대!” 잘못 걸렸다간 경을 칠까 더럭 겁이 나서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플레이보이 성향이 다분하여 평소에도 성적인 윤리관이 그다지 바른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치고 다른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생리적 성욕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보통의, 그러나 순수하지는 않은 인간 수컷이다. 

요즘 시작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주인공 이태오(박해준 분)도 마찬가지다. 이태오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와 아들 준영이와 함께 무척이나 단란하게 잘 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범가족이었다. 

그에게 2년 이상 사귄 불륜녀 여다경(한소희 분)이 있고, 여다경이 이제 막 임신까지 한 사실을 아내 지선우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선우는 경악했다. 믿고 믿었던 성실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였던 이태오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선우의 매몰찬 공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태오는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태오는 선우가 모른 척 넘어가 줬다면 한순간의 미풍에 불과했을 것을 왜 태풍으로 만들어버렸냐고 적반하장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오의 말을 뒷받침하듯, 태오의 동창이자 태오 회사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회계사 손제혁(김영민 분)은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지. 바람을 피는 남자와 그것을 들키는 남자. 남자는 본능을 이기지 못하지.” 물론 지선우가 반박한다.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건 아니야!” 태오의 말처럼 과연 사랑에 빠진 게 죄가 되는지 아닌지는 차근차근 따져 보기로 하자. 

그보다는 먼저 원앙새나 내 대학 친구, 혹은 이태오 같은 이들이 왜 바람을 피는 것인지 한번 알아보자. 많은 연구 결과는 동물이나 사람이나를 막론하고 바람을 피는 것은 유전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손제혁의 말과 비슷하다. 모든 남자는 바람을 피는 본능이 있다. 외도의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생들쥐의 한 종류인 프레리 들쥐와 목초지 들쥐는 성격이 판이하다. 성격만큼 성적인 행태도 다르다. 프레리 들쥐는 착실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다. 프레리 들쥐는 일부일처제에 충실하다. 같은 우리 안에 다른 암컷이 있어도 한눈을 팔지도 않고, 다른 수컷이 자신의 암컷에 접근하는 것도 철저히 차단한다.  

반면 목초지 들쥐는 전형적인 플레이 보이의 습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는 자신의 암컷은 아랑곳하지 않고 늘 혼자 돌아다닌다. 불특정 다수의  암컷들과 교미도 예사로 한다. 새끼들을 돌보는 일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 한 마디로 나쁜 남자, 아니 나쁜 수컷이다. 연구 결과 이런 차이를 만드는 관건은 들쥐의 뇌 속에 있었다고 한다. 

들쥐가 교미를 할 때 뇌 속에서 바소프레신이라는 물질이 대량으로 분비되는데, 프레리 들쥐는 이 물질을 받아들이는 양이 무척 많고, 목초지 들쥐는 매우 적더라는 이야기다. 바소프레신은 쉽게 말하면 일부일처제 호르몬이다. 바소프레신은 배우자에게 헌신하고 자식을 보호하고 양육하는데 충실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람기 많은 목초지 들쥐의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리는 처치를 하고 나면, 정조 관념과는 거리가 멀어서 천방지축 날뛰며 성적으로 문란한 난혼(亂婚)의 성향을 보이던 들쥐가, 갑자기 정절을 지키며 배우자에게 충실하고 새끼에게 자상한 단혼(單婚)스타일의 수컷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들쥐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도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일부일처제 호르몬인 바소프레신이나, 공감과 애착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상대적으로 낮거나 수용량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헌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반면 분비가 더 높거나 수용량이 더 많은 사람의 경우에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손제혁의 말처럼 남자들에게는 이런 외도의 본능이 있다. 지선우의 말처럼 여성들도 외도의 본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율로 따지면 남성의 외도 본능이 여성의 외도 본능을 압도한다. 요컨대 동물이나 사람할 것 없이 외도의 본능, 외도의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륜을 저지른 주제에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되레 아내에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덤비는 이태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그들의 본능에 따라 아무런 생각없이 행동하는것처럼 보이는 원앙새나 들쥐와는 다르다. 비록 사람들 역시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생리적 성욕 사이에서 속절없이 안절부절못하는 존재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본능에 완전히 사로잡혀 언제 죽음을 당할 지 몰라 두려움에 벌벌 떠는 전쟁포로 같은 신세는 아니다. 

본능에 100% 지배당하는 동물과 달리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 마음속에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잘못된 소유욕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는 않는다. 좀 극단적이긴 사례이지만, 유전적으로 소아성욕이 강한 상태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본능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자는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용서받을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다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회신경과학자인 래리 영 교수는 외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규칙을 어기면 가혹한 벌을 받았다. 불륜을 저지르면 재산과 가족, 자유를 잃을 수 있었다. 이런 억압 속에서도 많은 사람이 불륜에 빠졌다. 아무리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도하게 하는 뇌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외도는 옳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인간적인 의지로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뇌의 힘’ 그러니까 본능에만 휘둘려 끊임없이 외도 커플이 생겨나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이태오 지선우 커플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태오를 만나고 손제혁을 만나는가.   

나약한 인간들의 이런 본성을 꿰뚫고 있기에 종교적인 교리에서는 불륜을 신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경고하고, 불륜을 범한 이들은 반드시 응징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쪽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 눈을 뽑아 내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더 낫다."   

나약한 인간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일이 다반사인데, 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여자를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행위조차 간음죄로 규정한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는 거다. 눈이 죄를 지었으면 눈을 뽑아버리라는 극언도 불사한다. 죽어서 지옥갈래? 아니면 눈이 뽑히는 걸로 만족할래? 지옥 가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참회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신의 경고가 섬뜩하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에게 찾아온 어떤 환자는 남편의 불륜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깟 여자랑 한 번 놀아난 거 용서하고 말고 할게 뭐 있겠어요. 남자한테 섹스는 배설 같은 거잖아요" 그렇게 그 환자는 남편을 용서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지선우는 그렇게 넘어가지 못한다. 소변을 보고 싶다고 아무데나 보면 노상방뇨로 처벌받는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개나 하는 짓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태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아무하고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6회째 방영되었을 뿐인데 벌써 시청률이 20%대를 돌파한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 원작인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살짝살짝 바뀌는 한국적으로 번안된 스토리 전개도 흥미를 돋군다. 벌써 이번 주말이 오기를 나는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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