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글쓰기의 심리학

만년필 / 여성경제신문
만년필 / 여성경제신문

내가 다른 필기구를 제치고, 만년필을 가장 주된 필기구로 정한 것은 1986년도의 일이다. ‘마지막 광복군’으로 불리셨던 존경하는 김준엽(1920-2011) 전 고려대 총장님을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그때 선생께서 내가 쓴 원고에 가필을 하며 사용하시던 파커 만년필이 어린 대학생의 눈에는 그리 좋아 보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선생과의 첫 만남 이후 나는 파커 만년필의 지독한 마니아가 되었다.

하얀 200자 원고지 위를 지나갈 때 나는 파커 만년필의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원고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지금 만년필은 더 이상 나의 주 필기구는 아니지만, 그 소리는 아련한 추억의 갈피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영광스럽게도 선생은 대학생이었던 내가 쓴 글을 당신의 저서 ‘역사의 신’에 등재해 주었다.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당대 최고의 저널리스트들의 글과 함께...

대학 신입생 시절 당시 철학과 신진 교수였던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서 ‘노자’ 등 몇 개 과목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는 리포트의 질도 질이거니와 그 이전에 양도 많이 따졌다. A4 크기의 리포트지에 열 장 이내로 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특히 리포트를 손수 필기구로 쓰지 않고, 타자기나 그 당시 갓 나왔던 전동타자기 등 기계의 힘을 빌려 작성한 것은 “성의가 없다!”는 이유도 아예 받지도 않았다. 그도 당시에 만년필로 원고를 작성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도올의 한없이 까탈스럽고 괴팍(乖愎)하기 그지없는 성정은 그의 치기 어린 열정과 더불어 너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나 또한 그를 전인격적으로 존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내게 많은 ‘인문학적 계발’을 준 교수 중의 한 사람이었음은 틀림없다. 고맙게 생각한다. 30대 후반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귀국하여, 강의시간에 “40넘은 사람은 다 죽어야 나라가 혁신될 것”이라고 쇳소리로 호언장담하던 그도 이제 70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을 내가 처음 만난 건, 2002년 그가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할 때였다. 원래 미문(美文)으로 유명했던 그는 그 전 해인 2001년에 소설 ‘칼의 노래’를 발표하여 문단의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빨강, 노랑이 섞인 원색적인 옷을 입고 다니기를 즐겼던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는, 연필을 사용하여 집필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산문집 ‘밥벌이의 즐거움’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김훈 선생의 손은 대체로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인들이 보여주는 곱상한 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다고 블루칼라의 손 같지는 않았다. 문인의 손이라기보다는 무인(武人)의 손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저 투박한 손으로 연필을 잘 깎지는 못하실 것 같군!”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아마 지금도 연필로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유명한 이윤기(1947-2010) 선생은 골초였다. 그의 입에서는 동서고금의 온갖 신화 전설 동화가 줄줄이 엮여져 나왔다.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선생이 처음 보는 후학을 다정한 눈빛과 구수한 사투리 억양으로 살갑게 대해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동료 문인들과 글쓰기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였던 모양이다. 제각기 집필할 때의 도구들을 얘기했다. “나는 컴퓨터를 쓴다.” “나는 아직도 구식 타자기가 있다.” 등등 그런데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만년필이 아니면 영 원고를 쓸 수가 없어!” 아마도 그 분은 연필 아니면 글을 못 쓰는 김훈 선생처럼 예의 ‘고통스러운 행복’을 즐기는 분이었나 보다. 걸쭉한 그러나 품격 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이윤기 선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예 한지를 펴놓고 붓으로 글을 쓰지 그러냐?” 좌중은 파안대소했다고 한다.

90년대 초에 유학을 떠나 2000년도에 귀국한 나는 그새 급속하게 보급된 한국의 IT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어지간한 원고는 거의 예외 없이 컴퓨터로 친 텍스트 파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연필로 '마인드맵'을 그리고 그것을 보며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던 나는, 이제는 잘 되지도 않는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지금도 나는 독수리 타법이지만 이제는 적응이 많이 되고,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겨서 글 쓰는데 그다지 큰 불편은 없다. 긴 인용문을 옮길 때는 짜증도 나지만, 내 사고의 속도가 느린 탓인지 독수리 타법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 잡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요즘엔 장문의 인용문은 휴대폰으로 찍어서 사진을 텍스트로 전환 시켜주는 앱을 이용하니 참으로 편하다. 

최근 10여 년간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필기구도 많은 변천을 했다. 나의 경우만 해도 원고 집필은 태블릿 PC나 컴퓨터로 하지만 기타 메모는 다양한 기구가 동원되었다. 2000년대 초기에는 PDA가 나와서 수첩을 대신해서 손으로 그리는 메모를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셀빅’이라는 국산 PDA을 썼는데 용량도 작고, 조잡한 흑백 필기만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손으로 그리는 전자메모도 점차 발달하여 아이리버 출신의 양모 사장이 독립하여 만든 '민트패드'라는 도구가 획기적이었다. 민트패드는 수천 장의 포스트잇과 각종 형광펜, 색깔 있는 펜과 붓을 다 가지고 다니는 효과가 있었다. 필기감과 효용성을 놓고 보면 오늘날의 노트필기가 가능한 휴대폰의 성능을 확실히 능가한다.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뭔가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초소형 키보드가 달린 '조나다'라는 일본산 PDA도 정말 좋았다. '이지프로'라는 삼성에서 나온 컴퓨터형의 PDA도 본전을 뽑을 만큼 잘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디지털 글쓰기 도구들이다.

지금 나는 원고를 쓸 때 주로 12인치 태블릿 PC와 미니 태블릿 PC 두 대를 동시에 놓고 쓴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시켜 사용한다. 꼭 필요할 때만 노트북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다. 대체로 텍스트 위주의 원고를 주로 쓰는 나는, 집필용으로 '한글' 앱을 갖고 있는 태블릿 PC로 충분하다.

이제는 기본적인 일정 조정과 짧은 메모는 휴대폰으로 해결하고 다소 긴 원고는 태블릿 PC로 해결하지만, 그래도 손으로 하는 메모에 대한 추억과 연모(戀慕)는 끈질기다. 나의 경우에는 종이에 연필로 하는 필기보다 더 빠르고 다양하게 브레인스토밍에 도움이 되는 필기구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방에는 꼭 연필을 챙겨 다닌다. 한때는 미술 전문가들을 빼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많이 연필을 가져다닐 거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김훈 선생처럼 연필 칼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럴 땐 그냥 휴대용 연필깎이가 제격이다. 그러다가 내 성향을 정확히 파악한 어떤 후배가 선물해준 독일의 한 문구회사에서 나온 휴대용 연필깎이가 달린 연필 홀더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책이 없어지고 전자책이 이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고 예언했지만 요즘 출판시장이 불경기이긴 해도 책이 사라질 거라는 징후는 찾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전자기기에 각종 앱을 깔거나, 전자 종이에 손으로 혹은 전자 펜으로 필기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직접 종이에다가 손으로 연필을 들고 필기하는 세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각종 연필, 색연필, 크레용 등을 사용하며 수십 년을 살아온 우리 전통의 풍습이 사라진다는 징후도 없고, 그렇게 체득한 우리 몸의 기억이 그리 쉽게 지워질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육필(肉筆)이란 문자 그대로 몸으로 쓰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몸으로 써 내려간 기억이 가장 선명할 것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2차원의 디지털 평면에 키보드를 두드려 쓰는 일보다,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3차원적인 ‘공간정보’라는 단서를 남기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처럼 노트 필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연필이나 만년필 같은 도구가 없던 시절, 기록을 위해서 묶고(tie, 설형문자) 새기는(carve, 상형문자) 시대는 지났다. 이후 붓이나 펜과 같은 필기구가 등장하여 쓰는(write) 시대가 도래했고, 타자기로 두드리는(type) 시대도 지나갔다. 지금은 컴퓨터로 자료를 처리하는(process)시대이다. 그러나 연필이나 만년필 등의 도구를 이용한 쓰기(writing)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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