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필의 The 건강]
사망률 높은 혈관 질환
혈관 건강 걱정하는 시대
존엄한 삶과 직결되는 문제

암이 여전히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 바로 혈관질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암이 여전히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 바로 혈관질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암 진단은 곧 사형선고로 받아들였다. 의사들은 환자 본인에게 암 진단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가족에게 조용히 귀띔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조기 진단과 표적치료, 면역치료 등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암은 불치병에서 치료 가능한 질환이 되었다. 이제 의사들은 환자에게 솔직하게 진단을 알리고, 함께 치료 계획을 세워가자고 말한다. 실제로 암 진단을 받아도 10명 중 7~8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암 치료 후 5년을 생존하면 완치됐다고 보는 게 통념이다. 

사망 원인 지도가 바뀌고 있다

암이 여전히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 바로 혈관질환이다. 최근 발표된 2024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74명으로 압도적인 사망 원인 1위다. 4명 중 1명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범(凡) 혈관질환을 모두 합하면 암 사망률을 앞선다. 심장질환(65명), 뇌혈관질환(48명), 알츠하이머병(24명), 당뇨병(22명), 고혈압성 질환(16명) 등이다. 암에 앞서 혈관 건강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사망 원인 변화 추이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전체 사망자는 약 34% 늘었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주요 질환별로 살펴보면 암보다 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증가폭이 가파르다. 같은 기간 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15% 증가했지만 심장질환 사망자는 25.5%, 고혈압 사망자는 61.7%나 증가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무려 170% 이상 급증했다. 단, 같은 기간 뇌혈관질환 사망자수는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2015년 이후 뇌경색 치료에 혈전 제거술이 도입되면서 치료 성적이 크게 개선된 덕분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사망 원인 지도 변화는 우리에게 이전과는 다른 대응을 요구한다. 사실 암은 발생 요인이 복잡하고 예방ㆍ관리가 쉽지 않다. 같은 암이라도 돌연변이 유전자 종류에 따라 치료법이 완전히 다르다. 다행히 혈관질환은 암에 비해 예방ㆍ관리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혈관질환은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식습관, 활동량, 스트레스, 수면 관리 등 개인의 생활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 탓 병’이지만 바꿀 수 있는 병

대표적인 예가 뇌졸중이다. 뇌졸중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병처럼 보이지만 대개 10년 이상 고혈압이나 동맥경화가 누적되어 발생한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혈당을 잘 관리하면 대부분의 뇌졸중은 막을 수 있다. 심장질환도 마찬가지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은 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발생하는데, 혈압과 혈중 지질을 꾸준히 조절하고 금연을 실천하면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당뇨병은 과식과 운동 부족,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며, 생활습관을 바꾸면 약물치료 없이도 상당 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초기 당뇨병의 경우 체중 감량만으로도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온다. 치매 역시 완전한 예방은 어렵지만, 규칙적인 운동과 사회적 교류, 건강한 식습관으로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다.

혈관질환의 공통점은 ‘시간’이다. 하루아침에 생기는 병이 아니므로 생활습관을 바꾸면 10년 뒤의 나를 지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체중, 허리둘레 관리 등 예방책도 비교적 명확하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삶의 무너짐’

혈관질환을 더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망률이 증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암은 치료가 힘들지만, 수술이나 항암 치료가 끝나면 일정한 경과를 거쳐 결과가 비교적 빨리 드러난다. 그러나 혈관질환은 다르다. 예를 들어 뇌졸중은 살아남더라도 편마비나 언어장애 같은 후유증이 평생 남는다. 심한 경우 음식 섭취나 대소변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당뇨병은 합병증이 무섭다. 시력을 잃거나, 콩팥이 망가져 투석을 해야 하고, 발가락이나 발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심부전은 숨이 차고 피로감이 극심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혈관질환은 단지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떻게 존엄하게 사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노인이 장기간 입원해 거동을 못해 독립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폐렴에 잘 걸린다. 폐렴은 3위 사망원인 질환으로 폐렴 사망자는 지난 10년 사이에 149%나 크게 증가했다.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망 원인 지도의 변화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존엄을 지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암 검진을 받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혈관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나의 혈압을 알고, 가공식품과 짠 음식을 줄이고, 하루 30분만이라도 걷는 일···. 이런 단순한 실천이 10년 뒤의 나의 혈관을 지켜준다. 근거없는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필요시에 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을 매일 챙겨 먹는 것은 기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kpkim62@gmail.com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월간 <여성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행복플러스 섹션 편집장,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지냈다. 현재 의학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주간조선> 등 다양한 매체에 의학 기사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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