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집은 삶을 방식을 드러내는 공간
은퇴 후 살고 싶은 집을 생각한다

자연과 가깝게, 덜어내고 중요한 것만 담아내는 집이 은퇴 후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사진=Mariko Ebine on unsplash
자연과 가깝게, 덜어내고 중요한 것만 담아내는 집이 은퇴 후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사진=Mariko Ebine on unsplash

나이가 드니 집의 의미가 달라진다. 20~30대의 집은 바깥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갖는 곳(住, 머무르며 사는 곳)이었고, 결혼 후 집은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家, 혈연 등으로 이어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라는 집은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을 담은 공간, 나를 닮은 공간이다.

아직은 가족이 생활하기 적합한 위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가 되면 그런 집을 꾸리며 살겠다는 계획을 매일 하고 있다. 

갑자기 집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얼마 전 올해 말 예정된 이사 계획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고 12월 즈음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이가 졸업 전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 현재 살고 있는 곳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도심의 아파트가 아닌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땅을 밟으며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주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비슷한 환경의 빌라에서라도 살고 싶었다.

은퇴하면 산 가까운 곳에서 마당 한 켠에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텃밭용 화단도 마련해 모종하고 수확하는 시간도 갖고, 아침저녁 달라지는 공기를 느끼며 집 안팎을 구석구석 가꾸며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아마 20대까지 주택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울 시내였지만 작은 시멘트 뒷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다. 한켠에 살구나무, 목련 나무 등 큰 나무 몇 그루와 영산홍 등의 꽃나무들이 있었다.

겨울 지나 봄이 되면 새잎이 돋는 것을 발견했고, 여름이면 수도꼭지를 고무호스에 연결해 마당 여기저기에 뿌리며 더위를 식혔다. 바깥으로 난 문을 열어둔 채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었고, 방에 난 작은 창으로 나무 위에 걸린 달 모양이 변해가는 걸 지켜봤다.

돌이켜보면 지금 나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 그 집에서 보낸 계절들이 만들었던 것 같다. 신발만 신으면 마당으로 내려와 마주 볼 수 있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던 곳, 문만 열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곳을 떠올리면 그 시간을 갖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마음과 내 아이에게는 그런 경험을 전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동시에 든다. 

집과 건축, 공간과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중 열리고 있다. /사진=김현주
집과 건축, 공간과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중 열리고 있다. /사진=김현주

마침 제 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9.22~11.18)가 열리고 있다.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Radically More Human)’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선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조성된 주제전에는 가로 90m, 높이 16m의 친환경 대형 조형물 '휴머나이즈 월(Humanise Wall)'이 설치되어 있는데 38개국 110명 디자이너가 참여한 400여 개의 건축물 이미지와 시민 창작 커뮤니티 9개 팀의 아이디어를 모은 1428장의 스틸 패널에 사람과 건축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구석구석 적혀 있다.

'20세기에 들어 우리는 소규모 연립주택과 골목길이 만드는 거리의 온기를 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중략) 현관 앞의 마루, 계단 등 현관에 열린 공간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 문제를 겪을 확률이 약 3배나 높았다. 소통할 공간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가 약해지고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다.’

패널 중 하나에 적혀 있는 글이 눈에 띄었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총감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건축물을 통해 도시를 즐겁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을 주요 기획 방향으로 밝히며,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외로움을 느끼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물”이라고 강조한다.

이곳 외에도 서울도시건축관에서는 21개 도시 건축 프로젝트 25개 작품을 소개하는 도시전, 서울의 미래를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을 모은 서울전, 인터렉티브 미디어 전시인 글로벌 스튜디오 등을 만날 수 있으니 공간과 집, 마을과 도시에 대해 관해 관심이 있다면 방문하면 좋겠다. 

'사람의 숨결과, 체온과, 마음의 형태가 반영된 집, 일상생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깃든 집, ‘자연의 거처’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된 집, 작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집,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친숙한 느낌이 담겨 있는 집,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집,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집, 자연에 등 돌리지 않는 집···'

내친김에 가끔 펼쳐 보았던 책 <집을, 순례하다>(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사이)을 꺼내 들었다. 책에 적힌 글을 다시 읽어 보며 살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삶의 방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봤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hyunjoo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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