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연극 <삼매경>을 통해 생각해 본
나를 제대로 마주하는 힘

국립극단의 연극 <삼매경(三昧境)>을 관람했다. 출연 배우 지춘성의 젊은 시절 대표작으로 알려진 함세덕 원작의 연극 <동승>을 모티브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 이철희가 새롭게 극본을 써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나이 든 초로의 배우 지춘성이 34년 전 자신이 실제로 연기했던 극 속 인물 ‘도념’과 나누는 이야기와 감정들이 궁금했고, 잡념을 비우고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초월적 경지, 부처의 경지라고도 일컬어지는 '삼매경'이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배우가 누군가를 연기할 때 마치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사는 것처럼 몰입해야 한다는 연기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 경지에 오르기는 쉽지 않기에 배우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책과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고뇌하곤 한다.
연극은 젊은 시절 <동승>이란 작품에 출연해 유명해졌지만 완벽하게 그 인물이 되지 못했다는 후회와 아쉬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배우 지춘성이 자신을 평생 옭아맸던 극 중 역할인 어린 ‘도념’을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춘성과 그가 연기했던 도념은 그렇게 수십 년의 기억을 의식과 무의식이 되어 넘나들고 대립하고 갈등한다. 결국 지춘성은 도념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 안의 수치심을 해결하려 하지만, 그렇게 부정한 어린 도념이 사라지자 또 다른 도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극의 마지막 부분, 이 혼돈의 상황 끝에서 배우 지춘성은 “내 삶을 평생 괴롭혔던 뱀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고백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시간이 ‘아름다운 미완성’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를 깨무는 뱀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에 대해 고정된 관념과 집착을 갖는 것, 불교에서는 이를 아상(我相)이라 부르며 인간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我)’나 ‘내 것(我所)’이 없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춘성은 도념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싶어 하고, 도념을 자신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집착을 버려야 제대로 몰두할 수 있음에도 그는 도념을 나만의 배역이라 여기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런 아집의 나를 버린 배우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겠다고 외친다. 사랑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을 괴롭히던 연극을, 연극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공(空)이 되어야 진짜가 보이고, 그래야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날 무대 위 배우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반짝였다.

생각해 보니 그런 눈빛을 근래 본 적이 있다. 서울에서 전시를 열었던 지인에게서다. 제주도 내려가 작업을 하는 백은하 작가가 지난달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다. 꽃과 동물, 자연과 사람들을 동화적 화면으로 연출해 연결을 그려내고 울림을 전하는 작가인데 오랜 시간 알아 온 친구다.
그녀가 그간 제주에서 작업했던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의 제목 <찬란한 귀>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 세상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 안에서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포--옹!’(2024)이란 작품에 눈이 가 한동안 서 있었는데, 작가가 다가와 설명을 해 줬다. 지난 몇 년간 제주에 내려와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해 오면서 자신 안에 들어있던 여러 자기 모습을 만나게 됐고, 그것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드디어 내 안의 나들을 안아줄 수 있게 됐어요. 그걸 그린 거예요”라고 말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 나오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들을 어렵지만 끄집어내고 마침내 마주한 후 그 역시 자신임을 인정하고 자비할 수 있게 되어서일까. 어떤 때보다 맑은 기운이 가득했다. 들어주고 바라봐주는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위로받는다. 하물며 자신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중국 당나라의 승려 임제가 했다는 이 말은 어떠한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의존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야 궁극의 진리, 진짜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는 가두어진 상을 없애고 비우게 되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그것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배우와 화가의 눈빛이 맑고 깊고 반짝였을 테다. ‘삼매경’, 잡념 없이 오직 원하는 그것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행복은 이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hyunjoo7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