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식물 금손이 되길 바라며
내 주변 정원을 산책하다

몇 달 동안 베란다에 방치해둔 화분들을 정리했다. 올봄 크고 작은 키의 식물 몇 가지를 심었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스스로 식물을 잘 돌보지 못한 ‘검은 엄지손가락(Black Thumb)’이란 걸 알기에 관리 난도가 낮은 스킨답서스와 행운목을 들여왔는데 또 실패하고 말았다.
한동안은 혹시라도 다시 초록이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대로 두었고, 그 이후에는 살아있는 식물을 또 이렇게 죽였다는 자책감에 화분이 놓인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인제 그만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바싹 마른 뿌리들이 엉겨 있는 흙덩이를 폐기물 봉투에 넣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섣불리 시작해 생명을 버리게 됐다는 게 난감했고 미안했다.
정원이 있는 삶, 꽃과 나무와 함께하는 생활을 동경한다. 언젠가는 작더라도 흙이 있는 마당에서 꽃과 나무를 돌보면서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정원 관련 클래스도 다녀보고 사이트도 들락거리고 틈틈이 책도 읽지만 마음과 달리 화분 하나 제대로 못 돌보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용기를 주는 글을 읽게 됐는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정원도시 서울’ 블로그 (blog.naver.com/seoul_parks_official)에 실린 민병직 서울시민정원사의 인터뷰였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그는 자신이 작업했던 공사장에서 희생된 식물들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원 일을 배우게 되었고 지금은 정원사라는 이름으로 일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려는 분들께 추천해 주고 싶은 식물이 있나요”란 질문에 “특정 식물을 추천하기보다는 어떤 식물이든지 키우고 싶은 식물을 키우면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해요. 식물의 변화를 빨리 발견하고 ‘왜? 이럴까?’ 의문을 가지고 관찰해서 원인을 찾는 겁니다. 원인을 알게 되면 처방은 자동으로 나오니까요.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물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잘 키우게 되죠. 실패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못 살린 스킨답서스는 건조한 공기의 실내에 계속 방치해 잎끝이 갈변했고, 물 조절에도 실패해 과습으로 잎이 노랗게 변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순환시키고, 계절에 맞춰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며 적당하게 빛도 쬐어주고, 잎에도 주기적으로 분무하고, 흙을 만져보며 세심하게 물을 주어야 했는데 며칠에 한 번 습관적으로 물 주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니 알게 됐다.

얼마전 친구의 소개로 김포 월곶면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갤러리 민예사랑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블란서 국화, 소국, 쑥부쟁이, 연꽃 등 가을 색 가득한 꽃나무 사이로 다양한 모양의 동자석들이 멋스럽게 놓여있는 한국식 정원에 감탄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닐었다. 장재순 갤러리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집이자 갤러리인 이곳을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고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이 정도 크기의 정원은 아니었어요. 하다 보니 더 하고 싶어 커진 거죠. 좋은 나무나 돌이 있다고 듣게 되면 멀리까지 가서 가지고 왔어요. 매일 아침 정원으로 나와 점심 먹기 전까지 풀을 뽑고 가지 치며 지내고 있어요. 눈 뜨며 지내는 시간의 1/3을 정원에서 보내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이 정도 노력이 있어야 이런 정원을 가질 수 있다.
정원은 정적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자연의 공간이다. 아직은 그 변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고 환경도 못 갖췄지만, 내 주변의 정원은 언제든 방문해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누군가의 공간을 찾아가 정원과 함께한 시간을 만나볼 수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지하철 역사 앞 공공 정원을 감상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정원 도시를 표방하며 살고 있는 동네 어디서든 정원을 만날 수 있는 ‘매력가든’과 유아, 어르신, 장애인 등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동행가든’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조금만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공간에 맞춤하게 가꿔진 공공 정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스마트서울맵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알아가고 배워가고 경험하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먹었던 대로 자연과 함께 사는 곳으로의 ‘라이프스타일 이주(移住)’도 가능하리라. 단순한 교외로의 이주가 아닌 달라진 삶의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이주! 어디에 사느냐가 아닌 어떤 식으로 사느냐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이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하게 준비해야겠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hyunjoo7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