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센, 2022년 아세안 정상에 시계 증정
제작사 천즈 회장 소유 프린스호롤로지

지난 2022년 11월,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자들에게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자국산 한정판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메이드 인 캄보디아(Made in Cambodia)’ 문구가 새겨진 이 시계는 총 25점이 제작됐다. 이 중 한 점은 훈센 총리가 착용하고 나머지 24점은 각국 정상과 귀빈에게 전달됐다.
당시 훈센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계 사진을 공개하며 “순수한 캄보디아 기술자들이 조립했다”면서 “캄보디아의 과학과 기술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시계의 다이얼과 베젤에는 ‘ASEAN Cambodia 2022’, ‘Made in Cambodia’ 문구가 각인됐다. 시계 내부에는 고급 시계에서 사용되는 뚜르비용(tourbillon) 장치가 탑재돼 있다. 뚜르비용은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이는 장치다.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을 뜻한다.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시계의 가격은 고도의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뚜르비용 기술이 적용돼 수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정상회의 기념품은 통상적인 외교 관례”라고 했다.
이 시계는 캄보디아 시계 제조사 프린스호롤로지(Prince Horology)에서 제작했다. 프린스호롤로지는 캄보디아 납치 범죄 배후로 지목된 중국계 캄보디아 재벌 천즈(Chen Zhi)가 이끄는 프린스그룹 계열사다.
천즈 회장은 2014년 캄보디아로 귀화했고 주요 공식 행사에서 훈센 총리 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특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훈센 총리는 과거 고가의 명품시계를 착용하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캄보디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1500달러, 총리의 월급은 2500달러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억원대 시계를 정상들에게 선물한 사실이 알려지며 현지에서도 “과시성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다. 훈센 총리가 과거 파텍필립, 리차드밀 등 초고가 시계를 착용해 논란이 일었던 점도 다시 회자됐다.
프린스호롤로지의 모회사인 프린스그룹이 국제 범죄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당시 ‘명품 시계 외교’는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미 당국은 프린스그룹과 그 실소유주 천즈 회장을 범죄 연루 혐의로 기소했다.
프린스그룹이 훈센 총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2022년 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총리가 이 그룹 산하 기업의 시계를 외국 정상에게 선물한 행위가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정권과 재벌의 유착이 외교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상징적 사례”로 본다. 한 정치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2022년엔 산업 홍보로 포장됐던 시계 증정이 2025년엔 부패 구조의 일단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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