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1박2일 출장에서 만난 캡슐호텔
'가성비'를 넘어 '갓심비'
만족스러운 소비란 무엇일까?
충분함에 도달하는 비용이 아닐까

출장이든 여행이든 숙소를 정할 때면 늘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어차피 잠만 자는데 굳이 비싼 호텔?’. ‘그래도 다음 날 컨디션을 생각하면 조금 편한 데서 자야 하지 않나?’ 가격과 편안함 사이, 매번 줄다리기다. 숙소는 그저 ‘하룻밤 잠자리’일 뿐인데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여행의 만족도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 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부산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왔다. 첫날 밤엔 일정이 늦게 끝났고, 다음 날은 이른 아침에 서울행 KTX를 타야 했다. 이런 일정에서 숙소는 말 그대로 ‘씻고 자는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숙소 예약 앱 앞에서 장엄한(?) 선택을 마주한 나. 기준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첫째, 가격. 둘째, 최소한의 컨디션. 셋째, 위치.

1박2일 부산 출장 중에 묵게 된 캡슐호텔 내부 /권혁주
1박2일 부산 출장 중에 묵게 된 캡슐호텔 내부 /권혁주

이 세 가지 조건의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선택한 곳은 의외였다. 바로 ‘캡슐호텔’. 캡슐호텔은 1인용 작은 캡슐 형태의 공간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로, 저렴한 가격과 효율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숙박 형태로, 주로 도시 중심이나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도시를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나 단기 체류자에게 알맞은 숙박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캡슐이라 불리는 한 평 남짓한 1인실 내부에는 매트리스 침대와 침구류, 콘센트 등 최소한의 편의가 프라이빗하게 갖추어져 있고,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공용이다. 그리고 성별 공간 역시 구분되어 있다. 

내가 찾아본 캡슐호텔은 3성급이었는데 가격이 1박에 2만8000원이었다. 하룻밤에 3만원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가격이 너무 합리적, 아니 매력적이었다. 숙박비에서 절약한 돈으로 맛있는 뭔가를 사 먹는 데 좀 더 쓸 수 있겠다는, 그야말로 1차원적 설렘이 나를 감쌌다.

캡슐호텔.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실제로 이용을 고려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 예약 신청 탭을 누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주저함의 가장 큰 이유는 ‘캡슐’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어쩐지 공상과학영화 속 인체 실험(?)을 꾸미는 냉혹한 이미지. 그 속에 들어가 자도 되는 걸까?

하지만 직접 들어선 캡슐호텔은 내 예상과 180도 달랐다. 일본식 다다미방 같기도 하고, 익숙한 한옥의 사랑방 느낌의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원목 무늬 데코타일과 푹신한 매트리스, 뽀송뽀송 하얀 침구류, 단출한 조명과 몇 개의 콘센트가 갖춰져 있었다. 하룻밤에 필요한 건 다 있었고, 불필요한 건 없는 그야말로 '기능적인 공간'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본질에 충실한 것 같아 믿음직스러웠다. 

한 평의 공간이 좁지 않았냐고? 통창 덕분에 갑갑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통창 너머에 탁 트인 낙동강 뷰가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잠자리는 편안했다. 이전에 경험했던 투 베드의 호텔룸에서 누렸던 수면의 질과 비교해서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통창이 있어 갑갑하지 않은 1인실 캡슐 /권혁주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통창이 있어 갑갑하지 않은 1인실 캡슐 /권혁주

가격에 비례해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공용공간이라 했던 화장실, 샤워실도 수련원이나 캠핑장에서의 모양새를 상상했는데. 세상에! 공용공간이라 불렀던 건 다름 아닌 사우나 시설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파도 거의 없고 (혹은 캡슐호텔이 낯설어서 다른 손님들이 일반 투숙을 했던 탓인지) 공용시설을 나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다. 그렇게, 가격은 가볍고 만족은 묵직한 하룻밤이었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조식 포함 옵션, 더 넓은 방, 뷰 좋은 창문. 실제로 그 모든 것이 여행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캡슐호텔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내가 지불한 것만큼,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부산 캡슐호텔에서 마주한 낙동강 정경 /권혁주
부산 캡슐호텔에서 마주한 낙동강 정경 /권혁주

생각해 보면 만족스러운 소비란 결국 '가격 대비 효용'이다. 2만8000원.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보내는 1시간 값이라 생각하면 조금 아깝지만, 실속 있는 하룻밤 잠자리 값이라 생각하면 꽤 만족스러운 가격이다. 

1박 2만8000원짜리 캡슐호텔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가장 본질적인 기능을 제공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만족했다. 소비를 결정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테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소비는 대체로 ‘편리함’의 치환이 아니라, ‘충분함’에 도달하는 비용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진짜 좋은 소비는 때때로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낸, 본질과 민낯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와닿기도 한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