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옥수수 한 봉지로 완성한
독서 모임 주전부리 '수제 팝콘'
정성은 큰 노력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아닐까?

독서 모임을 위해 직접 튀긴 수제 팝콘 /권혁주
독서 모임을 위해 직접 튀긴 수제 팝콘 /권혁주

독서모임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필자가 직접 사람을 모으고, 책을 선정한다. 주로 다루는 책은 고전문학부터 현대소설까지, 대체로 문학이지만 가끔은 인문 교양 도서를 고르기도 한다.

책을 읽고 각자의 소회를 나누는 ‘독서 모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사는 이야기, 나에 대한 이야기,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대개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을 활용해서 모임을 주관한다. 퇴근 후 책 한 권의 취향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대화. 낯설지만 설레는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모임을 주관하면서부터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주전부리다. 간편하게는 편의점에서 산 과자나 초콜릿, 조금 신경을 쓴다고 하면 배달 음식을 활용해 간식을 준비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독서 모임의 한 멤버가 말했다. “모임의 분위기가 따뜻해서 그런지, 간식도 좀 ‘집밥’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로부터 다음 달. 나는 쿠팡에서 팝콘용 옥수수 한 봉지를 주문했다. 팝콘을 직접 튀겨 보기로. 시중에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전자레인지용 팝콘이 있지만 왠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굳이 팝콘용 옥수수 알맹이를 사서 팬에 튀겨보고자 관련 제품으로 구매했다. 비록 팝콘이지만 손끝으로 만지는 요리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달까?

가격은 1kg에 4000원 남짓. 영화관 팝콘 한 바구니 가격과 비슷하지만, 그 한 바구니를 10개 넘게 만들 수 있는 용량이니 사실상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팝콘을 직접 튀겨보기로 했다.

처음 팝콘을 튀길 때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기름 없이 그냥 가열했다가 냄비 바닥과 옥수수 알갱이와 내 마음을 태웠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기름을 부었지만, 온도를 잘못 맞춰 절반은 타버리고, 절반은 터지지 않았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기름을 붓고 온도를 잘 조절하여 팝콘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고소한 냄새와 바삭한 식감 이외에 아무런 맛이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요령을 터득했다. 1. 가스레인지에 센불을 올리고 냄비에 기름을 10바퀴 두른다. 2. 옥수수 알맹이를 (내 손 기준) 2/3줌 넣어 기름과 잘 섞이도록 섞는다. 3. 옥수수 알갱이에 맛소금을 3~4번 톡톡 뿌려 간을 한다. 4. 냄비뚜껑을 닫는다. 5. 중불로 낮추고 기다린다. 6. 톡, 톡톡, 팡!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팝콘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약불로 낮춘다. 7. 팝콘이 냄비 안에 차올라 뚜껑이 점점 올라오면 불을 끈다.

뚜껑을 여니 익숙한 영화관 냄새가 났다. 그 고소한 향을 종이컵에 옮겨 담는다. 왠지 팝콘은 근사한 사기그릇보다 그런 데 담겨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 시식용으로 한입 베어 물면 갓 튀겨낸 팝콘의 따뜻하고 바삭한 식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팝콘, 이렇게 쉬운 음식이었다니!'

모임에서 ‘수제’팝콘을 꺼내자, 멤버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거 직접 튀긴 거예요?” “냄새부터 다르네요!” 적어도 모임의 도입에서, 그 순간의 주인공은 책이 아닌 팝콘이었다. 책에서 발췌한 눅진한 주제 속에서도 팝콘처럼 바삭한 대화를 나눴다. 그날 이후, 팝콘은 모임의 ‘단골’ 주전부리가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직접’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다. 늘 시간에 쫓기고, 간편함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팝콘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 정성은 큰 노력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방향이라는 것을.

냄비를 흔들며 한 알 한 알의 ‘팡!’ 소리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도 힐링이 된다. 내가 만드는 것은 팝콘이 아니라, 이 팝콘을 만날 누군가를 떠올릴 때 함께 웃을 ‘좋은 시간’이 상상된다는 것.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빨리, 간편하게, 효율적으로만 흐르는 세상 속에서 조금 느리게, 조금 따뜻하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 겨우 팝콘이지만, 그 작은 봉지가 향기로운 여유와 사람 사이의 온기를 만든다. 책 한 권, 따뜻한 대화, 그리고 막 튀긴 팝콘 한 줌(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 캔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서촌의 작은 서점에서 만날 완벽한 삼위일체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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