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 가능한 돈
개인정보 유출 불가피
中 ‘신용 시스템’ 유사

정부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단계적 도입을 검토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CBDC의 편리성 뒤에 숨어 있는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신중론이 확산됐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과 협력해 내년 상반기 디지털화폐·블록체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한은이 구축한 블록체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일부 국고보조금 수급자에게 디지털화폐를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연내에 디지털화폐를 지급할 보조금 사업을 추릴 계획이다.
이 디지털화폐는 한은의 CBDC와 블록체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시중은행이 발행해 국고보조금 수급자 전자지갑(스마트폰 앱)에 송금한다. 화폐는 기존 통화가치와 연동되고 한은의 디지털 장부인 블록체인으로 실시간 확인·관리할 수 있다.
정부는 디지털화폐가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만큼 보조금 오남용을 막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고보조금이 올해 역대 최대인 112조3000억원 규모로 늘어나면서 부정 수급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건 CBDC의 ‘프로그래밍 가능성’이다. 발행기관 측은 자녀 용돈을 특정 항목에만 쓰게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 편리함을 강조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면 국민의 경제 활동이 정부의 뜻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반일 또는 반중 기조를 내세우며 해당 국가 제품 소비를 막거나 특정 지역 내에서만 돈을 쓰게 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은 사실상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재난지원금처럼 ‘유통 기한 있는 돈’,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위치 제한형 화폐’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1,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CBDC 도입을 위한 ‘예행연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외식·문화·여행 등 사용처를 제한하는 방식이 CBDC의 정책적 구조와 유사하다는 논리다.
한국은행은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보조금 부정 수급 제한이나 보험금 자동 지급 등 다양한 정책 활용을 위해선 결국 개인 데이터와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CBDC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고 취임 후 발행·유통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대신 스테이블코인 육성을 지시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만든 '달러 같은 자산에 고정된 암호화폐'라서 법적 통화는 아니고 신뢰성과 안정성이 발행사에 달려 있다.
스테이블코인 vs CBDC 차이점
| 구분 | 스테이블코인 (Stablecoin) | CBDC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
| 발행 주체 | 민간 기업, 블록체인 프로젝트, 은행 등 | 중앙은행(국가) |
| 가치 연동 방식 | 달러, 원화, 금, 채권 등 실물 자산이나 다른 암호화폐에 연동 | 국가 법정화폐와 1:1 동일한 가치 보장 |
| 법적 지위 | 원칙적으로 ‘사적 화폐’, 법정통화 아님 | 국가가 인정하는 법정통화 |
| 신뢰 기반 | 발행 기관의 신뢰 + 담보 자산 보유 여부 | 중앙은행의 신용과 국가의 법적 강제력 |
| 사용 목적 | 암호화폐 거래 안정화, 송금·결제 편의성, 디파이(DeFi) 활용 | 금융 포용 확대, 결제 효율성 개선, 화폐정책 보완 |
| 위험 요소 | 발행사 파산, 담보 부족, 규제 불확실성, 페깅 붕괴 (예: 테라-루나 사태) |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국가 통제 강화 논란 |
| 예시 | 테더(USDT), USD 코인(USDC), 다이(DAI) 등 | 디지털 위안화(e-CNY), 디지털 유로, 한국 CBDC(시험 중) |
CBDC가 중국식 사회신용 점수 제도와 비슷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은 전국 곳곳에 CCTV와 빅데이터를 결합해 개인의 소비 내역, 행동을 점수화한다. 점수가 낮으면 대출이나 사회적 서비스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야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CBDC를 도입할 경우 이재명 정부가 국민의 소비 패턴과 금융 내역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이는 곧 사회적 통제 강화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기술적 진보라는 명분만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스웨덴에서 이미 일부 활용되고 있는 칩 이식 사례를 거론하며 “정부가 기본소득을 미끼로 칩 이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개인의 신체까지도 국가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한강프로젝트(디지털 화폐 활용성 테스트)의 도입 일시 중단 및 결제수단 선택권 보장에 관한 청원'이 지난달 28일 올라와 동의 수 2만1250을 기록했다. 청원인은 △CBDC 도입 및 디지털 바우처 실증 사업의 일시 중단 △국민의견 수렴 절차(공청회, 여론조사 등) 법제화 △현금 및 기존 결제수단의 병행 유지와 사용권 보장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 등을 요구했다.
또한 게시판에는 'CBDC 도입의 일시 중단 및 선택권 보장에 관한 청원'도 지난 3일 올라와 동의 수 1만3644를 기록했다. 청원인은 "CBDC는 국가 또는 중앙은행이 모든 국민의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며, 이는 자칫하면 과도한 통제, 감시, 개인정보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자, 현금 사용자 등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복지에서 배제되거나 경제활동의 제약을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