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이례적 해지 급증
‘최고가 계약’ 비중 3분의 1
불장·전자 원인, 당국 조사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시장에 발생한 기이한 현상이 논란이다. 두 달 만에 1000건이 넘는 계약이 체결됐다가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통계 집계 이래 전례 없는 이 '유령 계약'들이 아파트 최고가를 조작하고 시장을 왜곡한다. 정치권까지 신경을 곤두세운 이번 사태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5일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계약 해지 건수가 6월 한 달에만 1067건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1000건을 넘어섰다. 통상 월 100건 안팎이던 과거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올해 2월 442건에서 시작해 5월 915건으로 치솟더니 '불장'이라 불리던 상승기 내내 계약 취소가 급증했다. 

전체 거래 대비 해지 비율도 10% 안팎으로, 예년의 2~4%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단순히 거래가 늘어서 해지가 많아진 게 아니라는 증거다. 다만 6·27 대출 규제 이후에는 거래가 급감하고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거래 해제 건수는 7월 286건, 8월 167건으로 줄어들었다.

심각한 건 취소된 계약 중 3분의 1 이상인 36.5%가 '신고가 거래'였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래미안펜타빌' 전용 158㎡는 지난 7월23일 39억원으로 신고가를 찍었지만 8월27일 계약이 해지됐다.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e편한세상 상도노빌리티' 전용 84㎡도 8월 13일 18억5000만원으로 거래됐다가 17일만에 해지됐다.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의 최고가 계약 취소 비율은 압도적이다. 올해 상반기 서초구는 66.1%에 달한다. 이어 강남구(52.8%), 용산구(49.4%), 마포구(48.7%), 종로구(48.4%), 광진구(46.2%), 송파구(45.0%), 양천구(42.9%) 순이었다.

계약이 나중에 취소되더라도 일정 기간 최고가로 기록되면 매수자들이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시세 상승을 부추기는 효과로 이어지는 이유다. 결국 실수요자만 혼란에 따른 피해를 입는다. 

계약 해지 급증의 원인을 놓고 해석은 엇갈린다. 올해 상반기 서울 집값이 단기간 급등하면서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거나, 추가 상승을 기대한 매도자의 변심이 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종이계약 대신 전자계약 비중이 확대되면서 단순 취소·재계약 사례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는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은 낮게 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6·27 대출 규제 강화되기 전에 미리 집을 당겨서 소비하는 현상이다. 가격이 급등하면 또 많이 해지하기도 한다"며 "거래 취소 급증 이후에 재계약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거래가 이뤄졌기에 가격 띄우기나 담합에 해당할 경우는 몇 퍼센트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토부는 기획조사를 통해 위법 의심 상황이 있으면 엄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시장 왜곡 시도에 대응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인 허영 의원은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가격 조작은 엄단해야 한다"며 "주택 거래의 신뢰가 흔들리면 국민의 주거 안정은 물론 정책과 금융 심사까지 왜곡된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집을 구매할 사람에게는 실거래가 조회 시 '최고가' 기록의 취소 여부를 확인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2021년부터 ‘거래 해제 이력’(해제 여부, 해제 사유 발생일)을 공개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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